'나가서 걷는 것'은 꽤 좋은 기분 전환 효과가 있다. 특히나 요즘의 나처럼 누군가가 옆에서 말을 걸어서 기분을 환기시켜 줄 사람이 없는 경우엔 특히 더 그렇다. 지나간 겨울은 좀 나갔다 오자는 생각이 드는 만큼이나 추워서 꼼짝도 하기 싫다는 기분이 충돌해서 한번 쳐져버린 기분을 환기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이번 달 들면서부터는 그런 기분이 들면 가디건 하나 주워 입고 훌쩍 집 근처를 한 바퀴 돌고 올 수 있어서 좋다고 생각하고 있는 중이다.
어제도 오후에 불쑥, 요즘 머리를 괴롭히는 이런저런 일들 때문에 기분이 한없이 아래로 가라앉았다. 아, 안 되겠다. 캄캄해지기 전에, 해 남아있을 때 잠깐이라도 걷고 오자. 불쑥 그런 기분이 들어서 누가 쫓아내기라도 하는 것처럼 순식간에 집 밖으로 튀어나갔다. 그리고 딱히 정해진 목적지도 없이 집 근처를 배회했다.
집에서 멀지 않은 근처 아파트 단지를 지나갈 때였다. 마트를 갈 때, 그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걸어가던 길이다. 그 길에 들어선 순간 잠시 걸음을 멈추지 않을 수 없었다. 아파트 둘레를 따라 심어진 벚나무가 일제히 꽃을 피운 것이다. 세상에. 벚꽃 폈다. 마치 누구더러 들으라는 듯 그렇게 중얼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어제 본 벚꽃이 올해 첫 벚꽃은 아니다. 이미 며칠 전에 나는 계란말이 김밥을 사러 나가다가 올해 첫 봄꽃을 발견한 이야기를 구구절절 쓴 적이 있다. 그러나 그날 본 벚꽃이 성질 급한 애들 하나 둘이 먼저 튀어나온 느낌이었다면 어제 본 벚꽃은 이제 필 때가 되었으니 핀다는 느낌이어서 조금 감회가 남달랐다. 나는 잠시 발을 멈추고 한참이나 고개까지 쳐들어가며 그 벚꽃을 구경했다.
어느 아이돌의 롱런하는 노래 가사처럼, 벚꽃이 피나보다. 이 겨울도 끝이 나나보다. 수십 년간이나 '강백호'로만 알고 있던 그 녀석의 원어 이름이 벚꽃 피는 꽃길이라는 의미의 사쿠라기 하나미치(桜木花道)더라는 사실도 문득 생각났다. 그렇게 한 바퀴를 돌고 집으로 돌아와, 괜히 유튜브를 뒤져 '벚꽃 엔딩'을 들었다. 들으면서 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그러지는 않았다. 그걸 지켜본 그는 좀 서운했을까.
꽃 피는 봄이 왔고, 나는 어떻게 살아는 있다. 그곳에도 꽃은 피는지. 그곳에 먼저 간 당신은 별래무양하시온지. 3월도 다 가는 아침에, 그런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