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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연말이 되면 지겹도록 나오던 노래 중에 '12월 32일'이라는 노래가 있었다. 노래를 들을 때(특히 발라드) 가사를 먼저 보는 내 입장에서는, 올해 안에 돌아오겠다던 사람이 돌아오지 않아서 내 시간은 영영 그 해의 연말에 멎어버렸다는 그 수사가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12월 31일 다음이 32일, 33일 하는 식으로. 그리고 작년 4월에 나는 그게 어떤 심정인지를 필요 이상으로 절절하게 깨닫게 되어 버렸다. 아마 지금 나만의 달력은 2022년 4월 367일쯤 되었을 테니까.
4월이 시작된 지 오늘로 벌써 3일째인데 아직도 달력을 넘기지 못했다. 특별히 마음에 걸리는 점이 있어서가 아니라 자꾸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우리 집 벽걸이 달력(언젠가 한 번 쓴 적이 있는 할아버지와 고양이 일러스트가 그려진)은 내 키로는 상당히 애매한 위치에 걸려 있어서 까치발 정도를 해서는 달력을 넘길 수가 없고 뭐라도 발 딛고 올라갈 것이 있어야 한다. 그렇다 보니 아 달력 넘겨야지 하다가도 이따가 하지 하고 넘어가고는 고스란히 까먹어 버리는 것이다. 아무리 그렇다고는 해도 3일이 지나도록 달력을 넘기지 않아 본 적은 없어서, 이것 또한 4월로 넘어가기 싫은 내 무의식의 소산이겠거니 생각하고 있다.
3월 달력 그림이 예뻤다. 벚꽃이 핀 가지 위에 새가 앉아있고, 할아버지와 고양이가 아래에서 그 꽃을 올려다보고 있는 그림이다. 그러나 3월 내내 나는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고, 그래서 그 예쁜 달력 그림을 거의 쳐다보지 않았다. 그러던 사이에 달은 바뀌었고, 오늘은 이 글을 쓰고 나면 만사를 제쳐놓고 달력부터 넘길 생각이니 저 그림은 이제 더는 볼 일이 없겠다. 달력을 쓰다 보면 가끔 참 마음에 들어서 올해가 지나 달력을 버리더라도 이 그림만은 어떻게 챙겨놓고 싶다는 그림을 종종 만난다. 그러나 결국 그때뿐이다. 돌아서면 그 그림은 잊혀지고, 설령 챙겨둔다 하더라도 웬만해서는 다시 꺼내서 보게 되지 않는다.
내가 원하건 원하지 않건 시간은 간다. 이 말은, 지난 1년을 보내면서 내가 가장 많이 했던 말 중의 하나인 것 같은데 그것조차 결국은 말이었고, 실감은 4월이 돌아온 지금에서야 하게 되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뭔가 있어 보여서 앞부분만 외우고 다니던 영시 중에 그런 구절이 있지 않던가.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이 자라고 추억과 정욕이 뒤엉키고 운운 하는.
이젠 그만 달력을 넘겨야겠다. 그리고 나의 4월을 살아야지. 가장 잔인한 달일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