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말부터 목을 졸라 오던 일 하나를 오늘 결판 지으러 갈 예정이다. 그전에, 우정 그의 봉안당에 들러서 인사를 하고 좀 징징거릴 예정이다. 무서워 죽겠다고. 어떻게 좀 해줘 보라고. 두 달 꽉 차게 자다가 새벽에 벌떡벌떡 일어나 앉을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았었고 그 사이 상황이 호전될 만한 다른 일은 없었다. 그러나 오히려 디데이가 눈앞에 다가오니 묘하게 차분해지는 느낌이다. 하긴 그는 늘 말했었다. 너는 작은 일에는 겁이 많은데 큰 일에는 되레 겁이 없어진다고. 이것도 뭐 그런 일환인지도 모르겠다.
오늘 일이 어떻게 끝나든, 슬램덩크를 한 번 더 보고 오기로 했다. 지난번 보고 왔을 때 좋았었기 때문에. 이상한 경험이었다. 살아있지도 않은 캐릭터들의 서사에서 내가 다 기를 받고 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서. 오늘 일이 잘 끝나면 잘 끝나는 대로, 못 끝나면 못 끝나는 대로 머리를 리프레시하기에는 아주 좋은 방법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영화가 처음 걸린 게 1월 초였던 걸로 알고 있으니 꼬박 넉 달이 되었는데 아직도 적지 않은 상영관이 남아 있어서 흥하긴 흥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고 보니 넉 달이면, 농구공 잡는 법도 모르던 강백호가 '왼손은 거들 뿐'으로 왕자 산왕을 꺾는 라스트슛을 성공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강백호 천재 맞구나 하는 생각과 난 도대체 그런 시간 동안 뭘 하면서 살았나 하는 자괴감이 겹쳐서 지나간다.
물론 나를 괴롭히는 4월 초 '고난의 행군'은 오늘로 끝이 아니다. 다음 주에, 더 크고 중요한 일정이 하나 남아있다. 그러나 오늘까지는 일단 오늘만 생각하기로 한다. 사람이 자꾸 넘어지는 건 너무 먼 곳을 보느라 눈앞의 돌부리를 못 보기 때문이라고 그는 예전에 말한 적이 있었다. 너무 힘이 들면 한 치 앞만 보고 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그래서 오늘까지는 좀 그래보려고 한다. 일주일 뒤, 한 달 뒤, 일 년 뒤의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하는 고민 따위는 잠시 접어두고. 뭐, 미욱한 인간의 이지로 아무리 예상해 본들 1년 전 내게 일어난 것 같은 그런 일이 닥쳐버리면 그때부터는 아무 소용도 없게 된다는 걸 뼈저리게 깨달은 탓도 있겠다.
이러구러 오늘 일은 아마 빨리는 끝나지 않을 듯해서, 게다가 서울이 아닌 경기도 모퉁이에 살고 있다 보니 길에 버리는 시간까지 생각하면 집에 돌아오면 빠르면 한밤중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한다. 간만에 하루 종일 집을 비우고 바깥을 미친 듯이 싸돌아다니는 하루가 될 예정이다. 그러고 돌아오면 나는 지치겠고, 그냥 조용히 침대로 기어들어가 푹 잘 수 있겠지. 이 끔찍한 4월의 하루를 그렇게 보낼 수 있으니 그것 또한 나름 '개이득'인 셈이다.
오늘은 가방 속에 그의 사진 한 장을 가지고 나가려고 한다. 괜히 그것만으로도 좀 마음이 편해질 것 같아서. 여기서 내게 해 줄 수 있는 게 뻔해서 그쪽으로 건너간 거라면 오늘 빡세게 실력발휘 좀 해 보라고, 그렇게 징징거릴 요량으로. 그라면 분명히, 어떤 식으로든 날 도와줄 거라고 믿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