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그런 것 따위 하지 않게 되었지만 매주 금요일은 배달음식 시켜 먹는 날이었다. 그가 떠나가던 그날도 금요일이었고, 그가 써놓은 일정 캘린더에 의하면 그날 우리는 근처 우육탕집에서 우육탕을 시켜 먹을 예정이었다. 배달돼 온 음식을 일회용기에 그대로 담아서 먹는 걸 끔찍이도 싫어했던 그는 배달 온 우육탕을 옮겨 닮을 그릇까지 다 미리 꺼내 놓았었다. 그래놓고 간밤에 그런 식으로 내 곁을 떠나갔지만.
그날 이후 그 가게의 우육탕은 딱 한 번을 시켜 먹었다. 그의 49제 때였다. 입맛이 까다로운 그가 집에 앉아서 편하게 시켜 먹기 미안할 정도의 맛이라고 극찬을 했던 가게이니만큼 원래라면 그의 제사상에도 좀 올려놓아주고 싶었지만 버스를 갈아타고 한 시간 반쯤을 가야 하는 거리에 있는 봉안당까지 그 우육탕을 가져가는 건 도저히 무리였다. 그래서 그날 제사상에는 그냥 그가 역시 그만큼 좋아했던 버터크림빵만 올리고, 우육탕은 집에 돌아와 시킨 후 그의 책상에 한 그릇을 올려놓는 것으로 대신했었다.
그런 전차가 있어서, 어제도 우육탕을 시켜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아침부터 봉안당에 다녀오고 집에 돌아오면 꼭 점심때이고, 그때부터 새삼스레 몸을 움직여 밥을 하고 뭔가 먹을 것을 만든다는 건 참 번거롭고 힘들게 여겨져 언제나 라면이나 대충 끓여 먹고 때우던 터였다. 오늘은 그럴만한 날이니 우육탕 정도는 시켜 먹어도 될 것 같았다. 그러나 배달어플을 뒤져보니 배달 가능한 가게에 그 가게는 없었다. 배달 수수료라든지의 문제로 배달을 하지 않는 식당이 더러 있다고 들었는데 그런 걸까. 그러나 그 정도가 아닌 것 같았다. 그 정도의 맛집이니 분명 다녀온 사람들의 후기들이 남아있을 텐데, 그 후기들이 죄다 몇 달 전을 마지막으로 끊겨 있었다. 문 닫았나. 불쑥 그 말을 해놓고 나는 좀 서운해졌다.
어제로 그를 떠나보낸 지 1년이 지났다. 그 말인 즉, 이제 내게는 작년 이맘때는 그 사람과 함께 무엇 무엇을 했는데, 하고 떠올릴 거리조차 이제는 남아 있지 않다는 말이 된다. 이제부터 내가 떠올리는 모든 것들은 최소한 2년, 혹은 그 이상의 묵은 추억들 뿐이다. 추억이 다 추억이지, 추억에도 새 추억이 있고 헌 추억이 있느냐고 물으신다면 그에 대해 대답할 말은 딱히 없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내 어설픈 기억력이 그나마 재빨리 훑을 수 있는 1년의 시간 안에 이제 그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새삼 가슴이 시리는 것만은 어찌할 수 없다.
1년 전 그날, 그가 우육탕을 덜어 먹겠다고 꺼내놓은 그릇들은 아직도 그 자리에 있다. 심지어 정기적으로 한 번씩 설거지를 해가면서까지 나는 그 그릇을 치우지 못하고 있다. 그 집도 문을 닫은 마당에 이젠 정말 치워야 하나. 그런 생각을 하다가도, 나는 기어이 그러지 못하고 만다. 언젠가 무슨 이유로든 치워야겠다는 마음이 드는 때가 오겠지. 어느 날 불쑥 큰 아들의 방을 정리하러 들어왔던 태섭이네 엄마처럼. 그렇게, 내 마음이 내킬 때까지는 그냥 그 그릇은 계속 그 자리에 두려고 한다. 이제 그 그릇에는 더 이상 그의 손길은 묻어있지 않고 그릇을 놓아둔 모양새 또한 그가 놓은 것에서 많이 흐트러졌지만, 그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