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세대 판타지 소설이라 할 수 있는 '드래곤 라자'에 나오는 한 교단에서는 인사말로 이런 말을 주고받는다. '필요한 때를 위한 작은 행운을'. 처음엔 꽤나 시시한 인사말이 아닌가 생각했다. 로또에 맞을 정도도 아니고 그날 아침 따라 늦잠을 자서 버스를 놓쳤는데 그 덕분에 다리가 무너지는 사고에 휘말려들 것을 면했다는 정도도 아닌 고작 '필요할 때를 위한 작은 행운'이라니. 그러나 그 책을 읽은 지 얼추 20년쯤이 지난 지금은 절감한다. 저런 '작은 행운'이야말로 죽을 사람을 살릴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의 일상을 버티어 가는 것은 결국 한 주에 몇 장 겨우 나오는 1등 당첨 로또가 아니라, 정류장에 도착하자마자 오는 버스라든가 횡단보도 앞에 서자마자 바뀌는 보행신호라든가 마침 1층에 도착해 있어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열리는 엘리베이터 같은 아주 작은 것들이라고.
그리고 오늘 내게는 그런 작은(실은 좀 큰) 행운과 그만큼의 용기가 필요한 일 하나가 기다리고 있다.
지난주에 웬만큼 해결해 놓고 온 그 일과 오늘의 이 일 때문에 나는 지난겨울이 어떻게 갔는지를 기억하지 못할 정도의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꽤나 많은 밤들을 그냥 이대로 잠들어 다시는 깨어나지 못했으면 좋겠다는 못된 생각을 하면서 잠들었다. 그러나 원래 그런 일들이란 사람의 마음대로 되지 않는 법이고, 나는 어떻게 꾸역꾸역 살아 오늘까지 왔다.
오늘 하루가 어떻게 전개될지, 그래서 내일 아침쯤에 나는 어떤 소회를 가지고 컴퓨터 앞에 앉아 어떤 내용의 글을 쓰고 있을지, 정말 한 치도 감이 잡히지 않는다. 늘 뻔하다고만 생각했던 하루하루지만 인생은 가끔 이런 식으로 예기치 못한 서스펜스를 안긴다. 오래된 만화책에 나오는 인생은 언제나 예측불허라 비로소 생은 그 의미를 지닌다는 구절처럼.
토요일엔 그가 있는 봉안당에 가서 내가 이런 청탁이라고 할 데는 당신밖에 없으니 이번 주 일 잘 좀 부탁한다는 협박 아닌 협박을 하고 왔다. 지난주 일을 거들어준 솜씨를 봐서는 일 잘하기로 유명하던 그 가락은 아직 죽지 않았던데, 오늘도 실력발휘 좀 해 주기를 바랄 뿐이다. 이제 겨우 여기 온 지 1년밖에 안 되는 신참에게 너무 많은 걸 기대하는 거 아니냐고 툴툴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도 하지만 오늘은 옛 코미디에서처럼 귀를 틀어막고 에베베베 하는 소리라도 내 가며 못 들은 체 해 볼 참이다. 그럼 혼자 남은 내 인생이 그리 평탄할 줄 알고 그런 식으로 도망갔냐고. 그런 거 아니면 조용히 하라고.
월요일이다. 그렇지 않아도 힘든 날이다. 오늘 모든 분들에게 '필요할 때를 위한 작은 행운'이 있기를 바란다. 물론, 나에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