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당신에게

꽃가위를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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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기분이 우울할 때 나는 집 근처의 생활용품매장에 간다. 어지간한 물건은 2, 3천 원, 웬만큼 비싸 보여도 5천 원 안짝이면 어지간한 건 살 수 있는 그곳에 가서 그러고 보니 이것도 필요하고 조만간 저것도 다 떨어질 것 같고 하는 식으로 몇 가지 물건을 골라 주섬주섬 담아서 계산을 하고 나온다. 그렇게 실컷 골라 담아봐야 어지간해서는 만 몇천 원을 넘기지 못한다. 그렇게, 물건 하나를 사려고 해도 이걸 사려면 저걸 안 사야겠고 저걸 사면 이것 대신 조금 싼 걸 사야겠고 하는 머리 아픈 셈을 잠시 벗어놓고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다 주세요를 외치는 재벌 비슷한 것이 된 기분으로 그냥 손에 집히는 대로 마구 담는다. 그렇게 사 온 물건들은 대부분은 유용하게 쓰지만 가끔은 천덕꾸러기가 되어 집안 여기저기 굴러다니다가 결국 버려지기도 한다. 그래도 큰 죄책감이 들지 않는다는 것도 좋은 점이다.


그렇게, 소소한 '금융치료'를 하러 들르는 그곳에 가면 하나 꼭 사 와야지 하는 생각을 몇 달째 하고만 있던 품목 중에 '꽃가위'가 있었다.


날마다 꽃병에 꽂아둔 꽃을 다듬는데 주방용 가위를 쓰고 있었다. 처음 한두 번이야 그러려니 했다지만 이게 나름 일상의 루틴이 되고 보니 이걸 주방용 가위로 해서 될 일인가 하는 생각을 내내 했다. 가끔 줄기가 억센 꽃들(왁스플라워라든지)의 경우는 줄기가 잘 잘라지지 않아 가위를 양손으로 붙잡고 힘을 줘서 잘라야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러다 보면 아무래도 줄기가 깨끗하게 잘리지 않고, 그로 인해 꽃의 수명을 줄이게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하던 터였다. 그러나 꽃집 사장님이 쓰는 것 같은 '전문가용'은 생각보다 비쌌고 나 같은 문외한이 굳이 그런 장비빨을 세울 필요도 없으니 딱 생활용품매장에서 파는 쌈직한 물건이면 적당하겠다는 생각을 몇 달째 하고 있었다. 그러나 생각으로만 그칠 뿐, 나는 몇 달째 꽃가위를 사지 못했다. 이유는 다른 게 아니라 잊어버리기 때문이었다. 그 몇 달 사이 나는 몇 번이나 그런 식으로 생활용품매장에 들렀고 그때마다 집에 돌아와 사 온 물건을 풀면서야 아 이번에도 까먹고 안 사 왔구나 하고 부르짖었다. 아무래도 하루에 딱 한 번, 그것도 정해진 용도로만 쓰는 물건이라 머릿속에서 떠올리는 우선순위가 한참이나 뒤로 밀리는 모양이었다.


어제, 4월 초에 벌어진 일들을 추가로 조금 더 수습하러 외출했다가 그 매장 앞을 지나게 되었다. 아, 오늘에야말로 사야겠다. 다른 건 아무것도 보지 말고 꽃가위 하나만 딱 사서 나오자. 그래서, 오픈 런을 뛰어야만 살 수 있다는 한정판 명품도 아닌 고작 2천 원짜리 꽃가위를 나는 실로 몇 달 만에 득템하는 데 성공했다. 오늘 아침 프리지아를 다듬는 데 써 보니 역시 주방용 가위보다 잘 드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제 먹는 것 자르는 가위로 꽃을 다듬지 않아도 되어서 나 자신이 우선 만족스럽다.


이제 하나씩 찾아야 한다. 그가 아닌 내가 뭔가를 하는 방법을. 이제 1년이 지났으니까. 마음은 아직도 헛헛하지만, 그게 사실이지만, 언제까지나 그 허전함에만 잠겨서 살 수는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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