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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Apr 17. 2023

점심을 너무 적게 먹으면

-369

머리를 자르러 나가던 날의 이야기다. 마침 밥도 없고, 뭔가를 먹으려면 밥부터 해야 될 판이었다. 거창한 뭔가를 해먹지도 않는데도 귀찮다는 생각이 새록새록 밀려들어, 그냥 머리 자르러 나가는 김에 근처 어디든 가서 사 먹고 올까 하는 생각을 했다. 배달을 시키자니 요즘 부쩍 오른 배달비도 아깝고, 그가 들여놓은 버릇 덕분에 배달 온 음식들을 다 그릇에 옮겨 담아 먹고 나면 설거지는 설거지대로 생기고 배달그릇은 배달그릇대로 치워야 하니 이래서야 배달을 시켜 먹는 메리트가 많이 줄어드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었다. 아, 그래. 돈가스. 돈가스나 사 먹으러 가자. 그런 생각을 했다. 원래부터도 집에서 튀기는 돈가스는 들이는 품에 비해 맛있게 튀겨지지 않아 자주 해 먹지 않는 편이었고 그가 떠나고 난 후로는 미니돈가스 몇 개를 사다가 덮밥이나 해 먹은 것이 고작이었던지라 막 튀겨낸 돈가스의 바삭바삭한 식감에 간만에 입맛이 좀 돌았다.


얼마 전 생긴 돈카스 프랜차이즈에는 그와 딱 한 번 같이 와 본 적이 있었다. 우리는 메뉴를 고를 때 그냥 제일 먹고 싶은 것 두 개를 시켜서 네 거 반 내 거 반 하는 식으로 나눠 먹곤 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럴 수도 그럴 필요도 없어서 그냥 내 것 하나만 간단하게 시키면 됐다. 나는 등심돈가스와 냉모밀 세트 하나를 주문하고 30분 정도 걸려서 식사를 다 마쳤다. 혼자 먹는 세트 메뉴는 생각보다 양이 많았다.


그러고 나서 집으로 돌아와서, 그날은 잠자리에 누울 때까지 간식 생각이 들지 않았다. 간만에 기름에 튀긴 걸 먹어서 그런가. 그러고 보니 내 점심 양이 좀 적은 건가 하는 생각을 한다. 반찬을 거하게 해서 먹지도 않는 판에, 밥솥에 들어있는 계량컵으로 한 컵과 4분의 1 정도(원래는 그나마도 딱 한 컵이었는데 한 컵의 쌀로는 밥이 자꾸 질어져서 4분의 1 정도 늘린 것이다) 밥을 해서 그걸 두 번에 나눠서 먹으니까. 요즘 들어 오후쯤 되면 부쩍 출출하고 뭐라도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건 내가 소위 '입이 터져서'가 아니라 내 점심 먹는 양이 좀 적어서 그런 걸까.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요즘 내 체중은 한참 살이 신나게 빠지던 시기를 기준으로 하면 1, 2킬로그램 정도가 되레 불었다. 그런데도 점심 양이 적나 하는 걱정을 하고 있으니, 이래서 내가 평생 날씬하지 못하게 살았나 보다 하는 생각을 한다. 아직은 잘 모르겠다. 정 양이 적어서 자꾸 오후에 뭔가 댕기는 것 같으면 점심 먹는 양을 좀 늘려야지. 나라도 나를 돌보며 살아야지. 이젠 누가 곁에 붙어 앉아서 그런 걸 일일이 살펴주지도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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