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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Apr 19. 2023

날씨가 좋아서

-371

아침에 일어나, 언제나처럼 화분을 내놓고 이런저런 일들을 하면서 보니 오늘은 쨍하니 날씨가 좋은 것 같아 어제의 꿉꿉하던 기분이 좀 나아지는 것 같은 기분이다. 어제도 늘 그랬듯 자잘하게 되는 일이 없는 하루였고 그 와중에 우산을 써도 소용없는 실비를 맞으며 나갔다 와야 할 일이 있는 바람에 오전 내내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날씨가 사람의 기분에 영향을 주는 건 한참 젊고 어릴 때나 그런 건 줄 알았는데 딱히 그렇지만도 않은 모양이다.


신변에 일어난 구구절절한 일들로 스트레스를 받느라 마음 편히 창밖 구경을 할 시간이 별로 없는 탓인지 올봄은 날씨가 좋은 날이 며칠 안 되는 것 같은 느낌이다. 이건 어디까지나 거의 대부분을 집안에서 보내고 무슨 일이 있어야만 잠깐 외출하는 사람의 생각이니 날이면 날마다 출근 등의 일로 출근하시는 분들께서 '아닌데? 올봄 날씨 되게 좋은 편인데?' 라고 말씀하신다면 그 말씀이 맞다. 나는 어디까지나 손바닥만 한 우리 집 창으로 바라보는 내 날씨를 말하고 있는 것이니까.

날씨는 작년 봄이 참 기가 막히게 좋았지, 하는 생각을 잠깐 하다가, 나는 그 생각에 아무런 근거가 없음을 깨닫는다. 내가 기억하는 작년 봄은 4월 8일 그날 하루뿐이다. 좀 더 정확히는 경찰서에 가서 두어 시간에 걸친 조사를 받고 울면서 걸어가던 그 거리에 눈부시게 피어있던 봄꽃들, 그리고 아무렇게나 주워 입고 나온 스웨터가 덥게 느껴질 만큼의 기온, 그런 것들이 너무나 강렬하게 머릿속에 박혀 있어서 그날 이외의 작년 봄이 어떠했는지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작년 봄의 모든 기억이 그 한순간에 고정되어 박제되듯 굳어져버린 느낌이랄까.


달력을 본다. 어느덧 4월도 중순도 지나 하순에 접어들기 직전이다.. 요즘은 5월이 되면 이미 슬슬 날이 더워지기 시작하니 올해의 '진짜' 봄도 이제 한 열흘 남짓 남은 셈이다. 물론 내 일신에 일어나는 속 시끄러운 일들은 아직도 해결이 완전히 되지 않았고 나는 그 일들로 연일 커다랗게 한숨을 쉬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그러나 그건 그거고. 지금이 봄이라는 사실, 그 봄이 열흘 후면 또 끝난다는 사실 정도는 좀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다음 주엔 그의 1주기가 있다. 그날도 그렇게, 서럽도록 날이 좋으려나. 그따위 기억이나 남기고 그렇게 도망가니 즐겁고 재밌냐고 화라도 좀 내고 싶다. 말해봐야 듣지 못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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