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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Apr 21. 2023

언젠가는 지금도

-373

2008년 무렵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한 2년 정도, 그야말로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지던 시절이 있었다. 손을 대는 일 족족 꼬이고 틀리고 엎어졌다. 아주 심술궂은 누군가가 저 위 멀리서 나만 쳐다보고 있다가 내가 하는 일 족족 훼방을 놓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던 시절이었다. 마음이 약해지다 못하서 그런 생각까지도 했다. 가끔 무당 될 팔자인 사람이 무당이 안 되고 속세에 살면 신이 사사건건 쫓아다니며 하는 일을 다 훼방 놓는다고 하던데 혹시 내가 그런 게 아닐까 하는. 나뿐만 아니고 그도 비슷했다. 둘 중 하나라도 일이 좀 풀려야 서로가 서로를 지탱하며 살 텐데, 그 무렵 우리는 둘 다 그야말로 죽지 못해 살았다. 지금 돌이켜봐도 그때 참 끔찍하게 고생했다 싶으니, 그때 정말로 고생했긴 했던 모양이다. 그 무렵 웃은 일이라고는 베이징 올림픽 때 야구 경기 보면서 웃은 기억밖에는 없으니까.


그래도 요즘 들어 가끔 그때 생각이 나곤 한다. 그땐 그래도 '외롭지'는 않았었으니까.


힘들었던, 그리고 실은 지금도 힘든 나의 4월은 더러는 어느 정도 수습이 되어가는 것 같고 더러는 어영부영 기한만 늘어진 채로 그렇게 삐걱거리며 지나가고 있는 중이다. 일상에서 찾은 몇 가지 소소한 재미가 없었다면 이 힘든 시간을 어떻게 버텨냈을까 앞이 캄캄하다. 밤에 자리에 누우면 가지에 가지를 치는 생각들 때문에 잠이 오지 않은 날도 여러 번 있었고 아침에 눈을 뜨고 왜 오늘 아침에 또 눈이 떠졌을까 하는 원망의 한숨으로 하루를 시작한 날도 여러 번 있었다. 지금의 나는 객관적으로 힘든 상태를 지나가는 중이다. 지금껏 늘 내 곁에서 나를 지탱해 주던 사람조차 없이, 나 혼자서.


그 언젠가 이런 순간도 그리워지는 때가 올까. 오늘 아침엔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2008년의 저 무렵도 비슷했다. 하루하루 사는 게 끔찍했고 하루하루 날이 바뀌는 것이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 끝이 안 보이는 무간지옥 같은 나날이 끝나는 날이 과연 오기나 할 것인지, 서른이 넘어버린 인생은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기 마련인데 앞으로도 내내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건 아닌지, 정말로 내 앞에 남은 것들이 이런 나날뿐이라면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 건지 하는 그런 생각들로. 그러나 그런 날들도 어떻게든 끝은 났다. 그리고 지금 나는 단지 그래도 그때는 그 어려운 나날을 함께 손 붙잡고 지나가 주는 사람이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그땐 그래도 그래서 좋았다는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런 것처럼, 지금의 이 끔찍하게 외롭고 힘든 순간마저도 그때는 이러저러해서 나름 좋았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날이 올까.


솔직히 별로 그럴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사람 인생이란 워낙에 모르는 거라. 그럴 일 없으리라 생각해도 돌아보면 또 그러고 있는 게 인생이라. 그 대는 또 내 앞에 어떤 슬픔과 아픔이 있어서 그래도 2023년 그때는 이러저러해서 좋았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될까.


산다는 건 결국 끝없는 과거 미화의 반복일 뿐일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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