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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Apr 24. 2023

그 빵집의 슈크림빵

-376

집 근처에, 1, 2년 사이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몇 군데나 들어섰다. 그곳들은 내가 처음 이곳으로 이사오던 무렵은 내비게이션조차 제대로 찍히지 않던 곳들이어서 그런 곳들에 쭉쭉 뻗은 아파트들이 들어선 것을 보면 감회가 새롭다. 이제 서울 쪽은 아파트를 지을래도 지을 땅도 없는 느낌이고, 내가 살고 있는 경기도 일대도 비슷해져 가는 모양이라, 이젠 이런 데밖에는 아파트 지을 곳도 없겠구나 싶기도 하지만.


대규모 아파트들이 몇 군데 들어서면서 근처를 운행하는 버스의 노선들도 아파트 단지 앞을 지나가거나 그 속을 통과하게끔 소소하게 바뀌었다. 얼마 전 그런 사실을 모르고 버스를 탔다가, 나는 그 새로 생긴 아파트 상가에 그와 내가 한동안 정말 열심히 다니던 빵집의 분점이 생길 예정이라는 현수막이 걸린 것을 봤다. 그 빵집은 우리 집에서 가장 가까운 나름의 '네임드'로, 그와 내가 본격적인 '빵지순례'를 하러 다니기 전쯤 정말 일주일에 한 번 꼴로 가서 5만 원 정도씩을 꼭꼭 지출하고 오던 집이었다. 세상에 그 빵집이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에 분점이 생긴다니. 그가 있었더라면 엄청 좋아했을 텐데. 그런 생각을 했다.


이번 주말에, 그 근방에 볼일이 있어서 갔다가 그 빵집이 한 달쯤 전부터 영업을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빵 같은 건 살 계획도 없었는데 뭔가에 이끌리듯 안으로 들어갔다. 너무나 익숙하지만 이제 1년 이상 사 먹지 않은 빵들이 매대에 고스란히 놓여 있어서 마음이 아프기까지 했다. 나는 트레이를 집어 들고 슈크림빵과 소금빵을 골라 몇 개를 담았다. 그가 있었더라면 이것도 사고 저것도 샀겠지만, 그래서 냉동실에 재어놓고 오븐에 돌려서 출출해오는 저녁쯤 맛있게 먹었겠지만 지금의 내게는 그럴 여력까지는 없어서 딱 그 정도만 샀다. 나는 이 집의 슈크림빵을 좋아했고 그도 그랬다. 집에 가져와 먹어본 슈크림빵은 딱 예전 그때 같은 맛이 나서 나는 좀 슬퍼졌다.


이번주에는 그의 1주기가 있다. 작년 49제 때는 그가 좋아하던 버터크림빵을 택배로 받아다 올렸는데 올해는 뭘 좀 올려볼까 고민하던 차에, 그냥 이 집의 슈크림빵을 사다 올려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듣기로 그곳은 남겨두고 온 사람 따위 까맣게 잊어버리게 될 만큼 즐겁고 행복한 곳이라지만, 그래서 그곳에도 맛있는 슈크림빵 따위 얼마든지 있겠지만, 그래도 우리가 같이 사서 같이 먹던 그 맛은 아닐 거 아니냐고. 그런 핑계를 대고.


가끔은 믿어지지 않는다. 시간이 이렇게나 흘러가고 있다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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