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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Apr 25. 2023

황사먼지만 여전한데

-377

기분 탓인지 뭔지 모르겠는데 한낮이 되면 조금 덥다 싶은 기분이 들어서 창문을 조금 열어놓게 된다. 날이 많이 따뜻해진 데다 일조량도 많아져서 화분들 또한 한낮에는 일부러 창문을 열어놓고 가급적 창틀의 끝쪽에 내놔서 햇빛이며 바깥공기를 쐬어주고 있다. 그런 탓인가, 아침에 일어나 방을 닦을 때 전에 없이 누런 황사먼지가 묻어나서 아 봄이구나 하는 사실을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된다.


성격이 깔끔한 그는 이 황사먼지를 끔찍하게 싫어했다. 물론 그런 걸 '좋아할' 사람이야 흔하진 않겠지만 그는 거의 알레르기 반응 비슷한 걸 보일 정도로 싫어했다. 그는 창문 좀 열어놨다가 집안 여기저기 먼지 쌓이는 꼴을 보느니 차라리 5월부터 에어컨을 틀겠다고 말하는 사람이었고 그런 소리를 하다가 내게서 돈이 썩어 남아 돌아가냐는 흔치 않은 핀잔을 듣곤 했다. 반면에 나는 봄 돼서 황사 날리는 게 내가 싫다고 안 날리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바꿀 수 없는 거면 적당히 참고 살아야 한다는 주의여서 그렇게까지 스트레스를 받아하진 않았었다.


그러나 올해부터도 그럴지, 그건 알 수 없는 일이다. 그가 떠나고 나서 알게 된 몇 가지 사실 중의 하나는, 내가 이렇게 무던을 넘어선 둔감을 유지한 채로 살아갈 수 있었던 건 옆에서 그만큼 유난을 떨어주던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을. 냉장고에 사다 재놓는 식재료들의 유통기한과 상태를 전부 알고 있는 그가 있었기 때문에 나는 날짜 좀 지난 거 먹는다고 안 죽는다는 말을 할 수가 있었고 틈만 나면 쓸고 닦는 그가 있었기 때문에 나는 청소 하루쯤 거른다고 집 쓰레기장 안 된다는 태평한 소리를 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그런 말을 해주던 사람이 감쪽같이 사라져 버린 지금, 나는 이제 그가 담당하던 온갖 유난과 까탈까지 다 내 몫으로 품어 안아야 되게 되었다. 생활이란 그래야만 굴러가는 것이니까.


방을 닦다가, 무슨 시루떡 떡고물마냥 누렇게 묻어나는 황사먼지를 보면서 아 이놈의 먼지 무서워서 창문을 못 열어놓겠네 하는 말을 하다가 잠시 떠나간 사람 생각에 손을 멈춘다. 그가 하던 말들을 무심결에 똑같이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나를 위해서, 나의 게으름과 무사안일을 위해서 그가 얼마나 많은 귀찮고 힘들고 번거로운 것들을 감수해 왔는지를 생각한다. 내가 조금이라도 그 귀찮은 것들을 나누어 가졌더라면, 그래서 그를 조금 덜 성가시게 했더라면 그는 조금이라도 내 곁에 오래 남아있어 주었을까. 그런 하나마나한 생각을, 또 한다. 황사먼저를 닦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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