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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Apr 26. 2023

거, 인사 좀 하고 삽시다

-378

이제 내일이면 그의 1주기다. 자꾸만 작년의 제사와 비교하다가, 아 그건 그의 기일 기준이 아니라 49제 때였구나 하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러니 그가 떠난 지는 명실상부하게 1년이 지난 게 맞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떠나간 지 꼬박 1년이 되도록, 나는 아직도 꿈에서 그를 보지 못했다.


그동안 정말 코빼기도 못 봤느냐고 묻는다면 그렇지는 않다. 그간 나는 그가 나오는 토막 난 꿈을 서너 번 정도 꿨다. 그러나 꿈속의 그는 내가 다만 그라고 인식하고 있었을 뿐 이목구비가 뿌옇게 흐려져 그였는지 그가 아닌지조차도 알 수 없는 생김새를 하고 있었고 지금 내가 처해 있는 상황들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없었다. 꿈속에서의 우리는 대개 이런 황망한 일이 벌어지기 전의 불특정한 어느 하루를 사는 중이었고, 그래서 나는 그런 꿈을 꾸고 난 후면 그를 만났다는 생각보다는 그냥 지나간 20여 년의 어느 하루가 녹화된 비디오테이프 같은 것을 발견한 듯한 그런 기분에 잠기곤 했다.


좀 얼굴을 알아볼 수 있는 꿈이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내가 미안하다고 말할 수 있는 상태의 그였으면 좋겠다. 그간 내 곁에서 얼마나 애쓰고 있었는지, 얼마나 온갖 것에 다 마음을 쏟고 있었는지, 그런 걸 모르지도 않으면서도 아는 척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이렇게 힘들어할 거면서 그동안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아껴주지 못한 것에 대해서. 웃고 살기만도 아까웠던 세월을, 별 것도 아닌 일로 짜증 내고 찌푸리느라 더 많이 웃어주지 못한 것에 대해서. 눈물 콧물 다 짜면서 미안하다고 말할 수 있는 그였으면 좋겠다.


어쩌면 괜찮다는 말을 듣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 네 잘못이 아니라는 말을 듣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 그냥 우리가 모르고 살았을 뿐 우리의 정해진 끝이 거기였으며, 너는 나름의 최선을 다했다는 알량한 면피를 하고 싶을 뿐인 건지도 모른다. 아니, 아마도 그게 맞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시간이 꽉 채워 1년이나 지났으면 이젠 한 번쯤 꿈에 들러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때도 되지 않았는지. 오늘도 잠에서 깨 글을 쓰다가, 문득 그런 생각을 한다.


정말이다. 그렇게 온다 간다 말도 없이 훌쩍 떠났으면, 이젠 인사라도 좀 하면서 살자. 그렇게 부탁하고 싶다. 이렇게 사람 쌩까고, 두 번 다시 안 볼 게 아니라면. 그 언젠가 내가 찾아갔을 때 안면몰수하고 나를 모르는 척할 게 아니라면. 사람이 진짜 그러는 거 아니라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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