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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Apr 27. 2023

바람이 몹시 불던 날

-379

며칠 전까지 갑자기 날씨가 푹해져 올여름은 또 얼마나 더우려고 벌써부터 이러는가 하는 소리를 투덜거렸었는데 어제부터는 또 귀신같이 4월 초도 아닌 3월 초쯤의 날씨로 되돌아가 버린 느낌이다. 어제 얇은 옷 한 겹만 입고 나갔다가 파고드는 바람 끝이 매서워 깜짝 놀랐다. 오늘 아침에도 이런저런 정리 좀 하느라고 열어놓은 창문으로 들어오는 공기의 기세가 매서워서 연신 팔뚝을 쓸어내리게 된다. 봄 날씨란 좀 변덕스러워야 제맛이라지만 이쯤 되면 단순한 변덕이라고만도 하기 어렵지 않나 싶은 생각도 든다.


오늘은 그의 음력 1주기다.


요즘 조금 게을러져 아침에 늦잠을 자는 날이 많아졌다. 오늘은 그래서는 안 돼서 알람까지 맞춰놓고 일찍 일어났다. 하던 정리를 마치고, 하던 일을 마쳐 놓고 그의 봉안당에 가서 봉안당에서 준비해 주시는 음식으로 제사를 지낼 예정이다. 원래라면 그런 것도 하나하나 내 손으로 준비해야 맞겠지만 워낙에 그런 재주 같은 건 없기도 하거니와 설령 한다 한들 여기서 가기까지 차도 없는 마당에 음식이며 제기를 싸들고 갈 엄두도 나지 않는다. 그래서 작년 49제 때처럼 봉안당 음식으로 만족해 달라고 그에게는 양해를 구할 생각이다. 뭐 이해할 거라고 생각한다.


어제는 빵집에 가서 제사상 한 편에 놓을 슈크림빵과 소금빵을 샀다. 거기서 이것보다 더 맛있고 좋은 음식들만 먹으며 지내겠지만, 오히려 그러니까 이런 아랫세상의 빵맛 같은 걸 어디서 보겠느냐고, 뭐 그런 어거지를 부려볼 참이다. 며칠 전까지는 그렇게 날씨가 따뜻하더니 오늘은 아무리 아침이라지만 공기 끝이 차갑다. 거기까지 오는 길 덥지 말라는 뜻인가 싶다가도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는데 싶어서 피식 웃고 만다.


이 글을 쓰기 전 유튜브를 뒤져서 '천 개의 바람이 되어'를 들었다. 작년 그를 잃고 반쯤 정신이 나가 있을 때 한 지인이 가사를 하나하나 카톡창에 타이핑해 가며 들어보라고 가르쳐 주신 곡이다. 그때는 이 노래를 듣고 정말 많이 울었는데 오늘 아침에는 울지까지는 않았다. 그냥 가슴이 먹먹하게 아플 뿐이었다.


어제오늘 유달리 바람이 많이 분다. 이 바람의 한 가닥 속에, '천 개의 바람이 된' 그가 섞여 있으려나. 그래도 가끔 생각한다. 아침에 나를 깨우는 종달새도 밤에 나를 비춰주는 별빛도 아직은 그렇게까지 필요하지 않으니, 그냥 돌아오면 안 되냐고. 그런 철없는 생각을. 나는 당신의 그 깊은 뜻을 헤아리기에는 아직도 많이 모자라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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