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당신에게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득 Apr 29. 2023

어쩌면, 마지막 올리브유

-381

그가 원 플러스 원 하는 마트 행사에서 사다 놓고 몇 번 써보지도 못한 올리브유 이야기를 두어 달쯤 전에 한 적이 있는 것 같다. 당시에 나는 한 병 먹어치우는 데 1년 가까이가 걸린 올리브유를  4월 말 안에 다 먹는 게 가능할까 운운하는 글을 썼었고 그 글의 댓글로 올리브유를 빨리 소진하는 방법에 대한 댓글이 몇 개 달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가 한 가지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이 있었다. 올리브유의 유통기한은 4월 말이 아니라 3월 말까지였다. 그러니 그 시점에서 저 미션은 올리브유에 가성 소다라도 쏟아부어서 비누라도 만들지 않는 이상 거의 실현이 불가능했던 셈이다. 그 사실을 뒤늦게야 알고, 나는 이 올리브유를 그냥 버려야 하나를 잠시 고민했다. 그러나 그럴 수가 없었다. 내 돈으로 산 다른 기름이었다면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냉장보관을 꼭 해야 되는 것도 아니고, 유통기한 조금 지났다고 뭐 죽기야 하겠어. 그런 기분이었다.


어쨌든 그때부터 나는 이 올리브유를 열심히 쓰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파기름 낼 때도 원래 쓰는 콩기름 대신 썼다. 볶음밥도 해 먹고 감자도 볶아 먹고 파스타도 해 먹고, 뭔가를 해 먹을 때마다 최대한 아껴서 조금씩 넣던 것과는 달리 이거 너무 많이 쓰는 거 아닌가 싶을 만큼 듬뿍듬뿍 썼다. 그리고 그 결과, 나는 어제 마지막 크림 리조또에 들어갈 마늘과 양파, 버섯 등등을 볶는데 남은 올리브유를 전부 다 쓰는 데 성공했다. 유통기한을 꼭 한 달 넘겨서 미션을 달성한 셈이다.


그와 함께 쓰던 소모품들, 샴푸라든가 치약, 양념들이 다 소진될 때마다 나는 좀 이상한 기분이 사로잡힌다. 그와 함께 하던 것들이 하나둘씩 내 곁에서 사라져 간다는 감각은 때로는 그 어떤 것보다도 심각하게 그의 부재를 나에게 각인시킨다. 어제의 올리브유도 그랬다. 이제 내가 또 싸지도 않은 올리브유씩이나 사다 놓고 쓸 일이 있을까. 어지간한 데는 보통의 콩기름으로 대체가 가능한 데다 보통의 식용유에 비해 가격도 비싼 올리브유를. 그리고 쓸 때마다 그의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올리브유를, 내가 과연 또 돈 주고 사서 쓰게 될까. 다 쓴 올리브유 병을 재활용 쓰레기통에 버리기 전에 문득 그런 생각이 떠올라 나는 한참이나 그 병을 버리지 못하고 쥐고 있었다.


그가 떠난 1년 동안 내가 배운 것 중 하나는 그래도 어떻게든 살아진다는 거였다. 지금 기분 같아서는 굳이 돈을 주고 사다 놓지 않을 것 같은 올리브유도, 또 언제 어떤 이유로 내 곁에 돌아와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오늘은 그냥 거기까지만 생각하기로 한다. 그래도 당신이 사다 놓은 올리브유, 유통기한 한 달이나 넘기긴 했지만 안 버리고 무사히 다 잘 먹어 없앴노라고. 나 잘했지? 하는, 딱 거기까지만.



매거진의 이전글 4월 엔딩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