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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Apr 30. 2023

어서 와, '무도'는 처음이지?

-382

세상 사람 다 좋다는데 나는 그게 왜 좋은 건지 모르는 경험을 아마 누구나 한두 번쯤은 했을 것이다. 그리고 다 지나고 나서야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데에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인 경험도 아마 누구에게나 한두 번씩은 있을 것이다.


내게는 '무도'가 그렇다.


딱히 뭔가 감정이 있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그와 나는 무도를 보지 않았다. 이유는 몇 가지가 있으리라 추측한다. 그와 나는 무도보다는 그 라이벌 격인 경쟁방송사의 여행 버라이어티 쪽이 더 취향에 맞는 편이었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지만 지금 생각하니 정작 주된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았나 싶다. 장장 10년을 넘게 방송하면서 무도에는 그들만이 공유하는 역사와 서사가 생겼고, 그래서 시작부터 그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는 사람으로서는 저게 뭔지, 저게 도대체 무슨 소린지, 저게 뭐가 웃긴다는 건지 영문을 알 수 없는 순간들이 어쩔 수 없이 생기게 마련이고 그도 나도 그런 류의 '소외감'이 싫었던 것 같다. 정작 그 후속편 격으로 방송되던 프로그램은 그래도 제법 잘 따라가면서 봤던 걸 생각하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나는 아직도 텔레비전 채널을 아무 데나 아무렇게나 틀어놓고 보지 못하고 있다. 마치 매우 조심해서 안전지대를 디디듯, '안전한' 채널 몇 군데를 정해놓고 외줄 타기 하듯 왔다갔다 하고 있을 뿐이다. 얼마 전 채널 하나가 추가되었고 그 채널은 거의 하루 종일 무도를 재방송해주고 있다. 방송된 기간만 10년을 훌쩍 넘으니, 그렇게 하루종일 재방송을 돌려대도 편성에는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다. 나는 요즘 그 채널을 틀어놓고 아침 정리를 하고 밥을 차리고 밥을 먹는다. 가끔은 내가 흠칫 놀랄 만큼 큰 소리로 웃기도 한다. 제일 기억에 남는 건 상자 안에 상금과 상자가 같이 들어있어서 상자 하나를 열 때마다 상금이 올라가는 대신 그 상금이 상자를 연 사람을 제외한 다른 멤버들의 출연료에서 각출되는 식이라, 전원이 혈안이 되어 그 상자를 빼앗으려고 경쟁하는 에피소드였다. 역시 그 치열한 방송계에서 10년이 넘게 국민예능 자리를 지켜낸 프로그램은 뭐가 달라도 다르구나 하고 생각했다. 저렇게 재미있을 줄 알았으면 조금 소외감 느끼는 걸 감수하고라도 그와 같이 볼 걸 그랬다는 생각도 한다. 그랬으면 토요일 저녁 한 때가 조금 더 즐거웠을 텐데.


내 길지 않은 인생의 절반이 넘는 시간을 함께 하던 사람이 떠났는데 나는 참 이렇게 멀쩡하게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은 시시때때로 든다. 그 생각들에 나는 시시때때로 죄책감을 느끼고, 그러면서도 또 꾸역꾸역 밥을 먹고 잠을 자고 내일을 기대하면서 살아간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결국 그런 것밖에는 없으니까. 작년 지금 무렵 '골든타임'을 놓쳐버린 이후로는 더더욱.


그래도 가끔은, 아니 실은 꽤 자주 미안하다. 너무 아무렇지 않은 듯 살고 있는 것에 대해서. 아직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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