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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May 01. 2023

작년 이맘때 뭐하셨어요?

-383

얼마 전부터 활동을 시작한 작은 커뮤니티가 있다.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모여서 사람 사는 이야기를 나누는 곳이다. 그곳에 소소한 이야기를 적고, 혹시 답글 같은 게 달리는지를 기다리고, 키우는 화분에 대한 조언도 들으면서 그렇게 지내고 있다.


어제는 그 커뮤니티에서 채팅방이 개설되어 있는 걸 보고 호기심에 들어갔다. 내일(그러니까 오늘) 쉬는 기념으로 개설된 방이라는 모양이었다. 간단한 자기소개를 하고 대수롭지 않은 이야기들을 두런두런 나누던 중에 어떤 분이 불쑥 그런 화두를 던지셨다.


벌써 5월이면 올해도 3분의 1이 갔네요. 작년 이맘때 다들 뭐하셨어요?


그 말에 돌아가면서 자신의 작년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지금과는 다른 직장에 다녔고 그 직장에서의 일 때문에 엄청나게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는 분도 계셨고 출산을 하고 몸조리 중이었다는 분도 계셨다. 이직하는 중에 사이가 떠서 본의 아닌 휴식기를 잠깐 가지셨다는 분도 계셨고 한창 바쁠 때라 뭘 하면서 지나갔는지 기억도 안 난다는 분도 계셨다.


내 차례가 되었다.


별로 솔직하게 말하고 싶지 않았다. 내게 일어난 그 일은, 때로는 습기를 흡수하는 제습제처럼 주변의 화기애애한 공기를 빨아들여 어둠게 만들어버린다는 사실을 나는 이미 몇 번 경험한 바가 있었다. 얼굴을 보고 이야기하는 자리가 아니어서 표정관리까지는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은 참 다행이었다.


좀 쉬었어요. 번아웃 비슷한 게 와서.


결국 내가 한 대답은 그거였다.


아, 번아웃. 그거 무섭죠. 진짜 순식간에 사는 게 귀찮아지더라고요. 그런 '간증'들이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왔다. 사람이 사는 모양이란 어디나 대충 비슷한 법이고, 그래서 번아웃 비슷한 증상을 한 번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채팅방은 순식간에 자신이 겪은 번아웃 증세를 토로하고 서로서로 다독거리는 자리가 되었다. 나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내가 방금 해버린 그 말에 대해서만 곱씹고 있었다.


번아웃이 올만큼 내가 그를 제대로, 많이 사랑했는가 하는 점은 잘 모르겠다. 솔직히 자신이 없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내게 닥친 그 일을 '사별'이니 하는 키워드를 쓰지 않고 설명할 때 번아웃이라는 말 이외에 어떤 말을 써야 하는지를 잘 모르겠다. 그리고 텅 비어버린 나의 지난 1년을 어딘가에 설명해야 할 때 번아웃이라는 키워드는 여러 가지로 참 유용하겠구나 하는 씁쓸한 생각을 했다.


오늘은 노동절이다. 이런 날 하필이면 번아웃에 관한 글로 한 달을 열게 되다니. 정말 열심히 일하다가 번아웃을 맞은 분들께는 참 죄송한 마음이다. 다만 느닷없는 끝을 맞아 타다가 꺼져버린 내 마음의 상태 또한 어느 정도는 유사한 곳이 있으니 부디 양해를 바란다는 말씀을 겨우 드릴 수 있을 것 같다.


5월에는 타다가 갑자기 꺼져버리는 그런 마음은 없기를. 그런 게 가능할 리는 없겠지만, 그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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