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당신에게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득 May 02. 2023

생일 축하합니다

-384

그는 자신의 생일에 크게 애착이 없는 편이었다. 생일이 언젠지 그딴 게 뭐가 중요하냐고, 산 날은 다 생일이지, 하고 말하곤 했었다. 지금 생각하니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던 건지, 아니면 그냥 주변 사람들을 번거롭게 하기 싫어서 그렇게 말하고 다녔는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는 게 안타까운 점이긴 하다.


그는 음력으로, 나는 양력으로 생일을 쳤다. 그래서 내 생일은 아주 일목요연하게 눈에 보이지만 그의 생일은 달력 아래쪽에 적힌 깨알 같은 작은 글씨를 일일이 찾아가며, 그나마 보통은 날마다 적혀있지도 않은 경우가 많아 일일이 손으로 꼽아가며 올해 생일은 언제다 하는 걸 체크해 두어야 했다. 그래서 나는 내 무심하고 둔한 성격 때문에 그의 생일을 깜빡하고 넘어간 적도 적지 않았고 그의 양력생일인 식목일 무렵이 되어서야 아차차 이 사람 생일이 조만간 있을 텐데 하고 허둥지둥 달력을 찾아본 날들은 고백하건대 그보다 훨씬 더 많았다. 그러나 그래도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생일이랍시고 내가 하는 조그만 성의 표시를 그는 언제나 기쁘게 받아주곤 했다. 그 물건이 그의 마음에 들든 들지 않든 그런 것과는 별개로.


그리고 오늘은 그런 그의 생일이다.


작년에도 느꼈지만 이 사람이 본인의 생일을 닷새 남겨놓고 떠났다는 게 도대체 무슨 뜻일까. 그런 생각을 어쩔 수 없이 하게 된다. 이왕 떠날 것, 그 수고라도 하지 말라는 뜻이었던 건지. 차마 그렇게까지는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울컥 마음이 힘들어진다. 그건 더없는 슬픔이기도 하고 누가 그딴 식으로 내 생각해 달랬느냐는 식의 철없는 역정이기도 하다. 이런 식의, 해 봤자 아무 소용없는 생각을 자꾸 곱씹는 것은 원래도 어느 정도는 내 성격이었지만 그가 떠나고 난 후로는 조금 더 심해진 듯도 하다.


작년 그의 생일에 내가 무엇을 선물해 줄 생각이었는지 하는 것들은 이젠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 1년 사이에, 그는 이 세상의 물건 같은 것은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곳으로 혼자 가버렸다. 오늘도 그렇다. 기껏해야 꽃이나 한 다발 봉안당 앞 헌화대에 올려놓을 수 있을 뿐이다. 꽃 질린다고, 그만 좀 사 오라고 그는 말할지도 모른다. 갈 때마다 사 가니까. 그렇지만 그것 말고는 내가 올릴 수 있는 물건이 아무것도 없는 걸 뭐 어쩌겠냐고, 그렇게 대꾸해 볼 참이다.


오늘 그의 하루가 더없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가 쓰고 남는 행복이 한 줌이라도 있다면, 나에게도 허락되기를.



매거진의 이전글 작년 이맘때 뭐하셨어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