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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May 04. 2023

가끔은 마음에 몸살이 난다

-386

아무렇지 않은 하루였다. 아무렇지 않은 하루가 될 예정이었다. 갑자기 걸려와 그다지 튼튼하지 않은 내 멘탈을 박살 내놓는 종류의 전화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떠나간 그를 추억해야 할 만한 무슨 날인 것도 아니었다. 오래전 최진실과 박신양이 나온 어떤 영화처럼, 자신의 마지막을 예감한 그가 미리 써놓았던 편지 같은 걸 발견한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어제는 평온하다 못해 지루한 하루였다. 그랬어야 했다. 적어도 점심을 먹고 치울 때까지만 해도 그랬다.


세 시가 조금 넘어가면서부터 갑자기 마음이 어지럽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냥 시기가 시기인지라 마음이 뒤숭숭한 모양이다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러나 약 한 시간 상간에 내 상태는 점점 심각해졌다. 마음이 아닌 몸이 실제로 아파 오기 시작했다. 아주 지독한 몸살에 걸리기라도 한 것처럼 온몸이 욱신거리고 식은땀이 났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다고 이러는 건지 그 부분이 이해가 가지 않아 더욱 어안이 벙벙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이 상대로는 일이고 뭐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결국 나는 오후 일정을 전부 작파하고 이불을 쓰고 드러누웠다.


한 시간 정도를 자고 깼다. 그러나 상태는 더 나빠졌다. 온몸이 푹푹 쑤시다시피 아파왔다. 나는 설설 기듯이 일어나 창문에 커튼을 치고 불을 껐다. 그리고 두세 시간 정도를 더 죽은 듯이 잤다. 그래서 나는 저녁 일곱 시도 한참 지나서야 조금은 나아진 기분으로 눈을 뜰 수 있었다.


나는 예전에도 서너 번쯤 이런 증상을 겪어본 적이 있다. 가벼운 공황발작이다. 1년 전 그가 떠나고 난 후로도 몇 번 이런 일이 있었다. 그러나 어제의 경우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어 좀 당혹스러웠다. 상기했듯 어제는 그야말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평온하다 못해 무료한 하루였으며 그렇게 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무슨 윤동주 시인도 아닌데 왜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이렇게 괴로운 건지 그 사실이 납득이 가지 않아 나는 잠에서 깨어나고도 한참이나 더 멍하게, 어둠 속에 앉아있었다. 지금도 이유를 잘은 모르겠다. 그냥 그의 1주기에 그의 생일까지 지내고 나니 이제 정말로 1년이 지났구나 하는 생각에 긴장이 풀려버린 건가 하는 짐작만 하고 있을 뿐이다. 어디까지나 짐작만.


나는 꾸역꾸역 이불을 들추고 일어나 커피 한 잔을 따라 와서는 한참이나 시간이 밀려버린 펜글씨를 쓰고 어제 치 그림 연습을 했다. 늘 하던 일들을 하는 동안 정처를 모르고 헤매던 내 마음은 조금씩 안정을 찾았고, 몇 시간 안에는 흘러간 코미디 프로그램 재방송을 보며 웃을 수 있을 정도까지 나아졌다. 그러나 분 단위로 바이탈 사인이 추락하던 그 한 시간의 기억은 사뭇 섬뜩해서 아직도 좀 진저리가 쳐진다. 또다시 그런 순간이 온다면 그때는 뭘 어떡해야 하나 하는 걱정도 들고.


가끔은, 아무 일 없이 산다는 것 그 자체가 이렇게나 어렵다. 그런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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