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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May 05. 2023

열일 중 2

-387

지난 4월을 시작하면서 대놓고 이번 한 달은 힘든 달이 될 예정이라는 글을 썼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얼마 전에는 4월을 보내면서 4월 안에 해결해야 할 당면한 중대사가 두 가지였고 하나는 1패에 가까운 1무, 하나는 1승에 가까운 1무라 토탈 성적이 1승 1패에 가까운 2무라는 말도 썼었다. 그의 1주기 때도, 며칠 전 그의 음력 생일에도 나는 그를 찾아가 이것 좀 어떻게 해달라고 빼먹지 않고 징징거렸다. 나 이것 때문에 진짜 힘들어 죽겠다고도.


그리고 그중 1승에 가까운 1무는, 결국 나의 승리로 어제 결론이 지어졌다.


영국 빅토리안 식의 사고방식은 무슨 일이든 닥쳤을 때 '최악을 가정하고 행동하는 것'이라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상상하던 최악이 일어나도 당황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며, 그 최악이 일어나지 않으면 그 사실만으로도 감사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라던가. 그 말까지 가지 않더라도 비관적인 사람이 되는 건 막막한 일이 닥쳤을 때 역설적으로 스스로를 완충하는 좋은 방법이기도 하다. 과히 쉽지 않은 몇 년을 살아오면서 나는 나도 모르게 어느 정도 비관적인 성격을 가지게 되었고 그래서 이 일 또한 쉽게는 해결이 나지 않을 것이며  해결이 난다 한들 엄청난 품을 들여야만 할 거라고 내심 생각하고 있었다. 어차피 장거리 달리기니까 빨리 지치지만 말자고, 그게 나 자신에게 내가 제시한 유일한 당근이었다.


그리고 그러던 나에게, 너무나 빨리, 더불어 깔끔하게 정리된 어제의 일은 묘한 감흥을 안겨 주었다.


정말 이 사람은 거기 가서도 단 하루도 쉬지 못하고 나를 위해 끊임없이 뭔가를 하고 있구나.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마음이 편하지 않았겠지. 그는 원래부터도 자신이 그리 오래 살지는 못할 것 같고 그러나 떠나기 전에 너 하나 걱정 없이 살 만큼은 뭔가를 해놓고 갈 거라고 큰 소리를 탕탕 치곤 했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이미 몇 번이나 쓴 말이지만 그에게 그날 그런 식으로 나를 떠나가지 않을 방법이 백만 가지 중에 한 가지만 있었더라도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을 거라고 나는 믿는다. 그 순간을 하루라도, 아니 몇 시간이라도 미룰 수 있었다면 그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렇게 했을 것이지만 도저히 그럴 수 없었기에 그런 식으로 갑자기 나를 떠나갔을 거라고도. 그래서 그게 못내 마음에 걸려서 거기 가서도 쉬지 못하고 거기 간지 고작 1년밖에 안되는 짬밥에 천지사방을 쫓아다니며 나를 보호해 주려고 애쓰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고.


거기는 여기서 있었던 일 따위 기억도 안 날만큼 행복하고 좋은 곳이라는데 거기 가서까지도 나를 잊지 않아 줘서 고맙다고, 그리고 정말로 염치없지만 남을 일 하나도 어떻게 잘 좀 부탁한다고, 그런 뻔뻔한 소리를 되뇌어본다. 평생 내 빽 해주기로 해놓고 그렇게 도망갔으니 어쩔 수 없는 거 아니겠냐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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