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당신에게

내가 바라는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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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상담을 받으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다. 서점에 좀 들러볼까 하고, 평소 돌아오지 않던 길로 한참을 걸어가던 중이었다. 파란 점퍼를 입은 학생 하나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유엔 난민기구. 옆에 있는 접이식 테이블에는 그런 패널이 붙어 있었다.


"저희 기구 홍보대사가 영화배우 정우성 씨인데요. 너무나 바쁘신 관계로 딱 절반만 닮은 제가 대신 홍보 중입니다. 잠깐 시간 좀 내주실 수 있으세요?"


그 밉지 않은 너스레에 그만 웃고 말았다. 아니, 한 70% 정도 닮으신 것 같아요 라고 대꾸해 주었다. 나는 그날 솔직히 짧지는 않았던 그 학생의 설명을 일일이 듣고 큰 금액은 아니나마 정기후원을 한 건 약속했다. 날은 더웠고 마스크까지 쓴 채 제각기 갈 길 바쁘고 할 일 많은 사람들을 붙들고 쉽지 않은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는 학생들이 눈에 밟혀 근처 카페에 가서 아아메를 사서 한 잔씩 주고 왔다. 그 대수롭지 않은 커피 한 잔에 연신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는 학생들에게 좋은 일 하느라 수고한다는 인사를 건넸다.

예전엔 기부 같은 건 거의 하지 않았다.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탓도 있었지만 내 마음의 문제가 컸다. 나는 세상에서 내가 제일 불쌍했고 그래서 별로 남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잊을만하면 한 번씩 터지는, 그나마 남아있는 사람들의 선의를 이용하는 몇몇 나쁜 사람들의 뉴스는 나의 이기심을 부채질했다. 로또나 한 장 되면 그 때나 좀 생각해 보지 뭐. 나는 늘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던 나는 그가 떠난 후 조금 생각이 바뀌었다.


그가 떠난 지 두어 달 남짓이 지났다. 그 사이 나는 이 사람이 어디선가 나를 지켜주기 위해 애쓰고 있구나 하는 순간을 몇 번이나 지나왔다. 그것은 일전에 브런치에도 한 번 쓴, 도저히 해결될 것 같지 않던 일이 알아서 스르륵 풀려버린 순간이기도 했고 내가 볼일을 다 보고 집에 들어서자마자 거짓말처럼 천둥이 치고 비가 내리던 그 어느 날의 날씨이기도 했고 절대로 나를 이해해 줄 것 같지 않던 상대에게서 얻어낸 이해와 양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런 일이 생길 때마다 나는 기부금이 필요한 곳에 조금씩이라도 기부를 하기 시작했다. 백 퍼센트 좋은 마음만은 아니다. 내가 여기서 이런 음덕을 쌓으면 떠나간 그에게 조금이라도 좋은 영향을 주지 않을까 하는, 다분히 얄팍한 계산속에서다.


요즘 나는 자의 반 타의 반 입에 달고 살던 간식과 주전부리를 거의 전부 끊었다. 밀린 드라마며 영화를 보느라 새벽 두 시 세 시는 되어야 잠이 들었던 수면 시간도 본의 아니게 12시에서 아침 여섯 시 반 정도로 당겨졌다. 기상 시간이 당겨지니 배가 일찍 고파서, 두유 한 잔이나마 아침 비슷한 것도 먹게 되었다. 그런 생활 덕분인지 살이 많이 빠졌다. 그래서 나는 그의 일을 모르는 사람들에게서 요즘 살 빠지고 예뻐졌다는 말을 가끔 듣는다.


그런 식으로 나는, 조금이라도 더 나은 내가 되려고 애쓰고 있다. 언젠가 다시 만날 날에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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