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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선 승무원과 결혼한 아는 동생이 있다. 남편이 한 달에 두세 번 집에 오는데, 그 이야기를 들은 결혼한 여자들은 대부분 전생에 나라를 몇 개 구했냐고 물어본다고 한다. 가끔 부인이 며칠 친정에 가서 집이 비었다고 뭘 하며 놀까를 생각하며 꿈에 부푼 남편들의 글이 가끔 인터넷에 보이는데 그건 여자들도 비슷한 모양이다.
그와 나는 어딜 가나 함께였기 때문에 요즘 신랑이 통 안 보이네? 하고 묻는 동네 인근의 단골 가게 사장님들을 맞닥뜨릴 때마다 나는 잠시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이야기를 어디까지 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 처음엔 그냥 얼버무리며 요즘 좀 바쁘다든지, 집에 있다든지, 출장을 갔다든지 하는 식으로 둘러댔다. 그런 변명을 하고 돌아 나오는 마음은 그지없이 참담해서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울었던 기억도 몇 번이나 있다.
그러던 나는, 얼마 전부터는 그냥 그렇게 대답하고 있다. 저희 월말부부해요. 신랑이 지방으로 발령 나서요. 그러면 대부분, 글의 서두에 썼던 아는 동생과 비슷한 반응이 돌아온다. 좋겠네. 가끔 그렇게 좀 떨어져 살아야 금슬도 좋아지고 그런다더라. 그 말에 나는 그냥 말없이 웃는다.
이 가당치 않은 대답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사실 내가 아직도 그의 부재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입을 열어 그 사실을 말해버리면 그게 정말로 사실이 되어버릴 것만 같은 그런 기분. 어린아이처럼 떼를 쓰며, 아니라고, 언젠가 돌아올 거라고 그렇게 믿고 싶은 마음. 사실은 이게 제일 크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아무리 단골이라지만 그저 얼굴이나 아는 정도인 분들에게 그들과 나의 관계에 비해 턱없이 큰 안타까움을 안겨주고 싶지 않아서다. 아직도 젊은 사람이 일조일석에 그렇게 떠났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그분들의 마음 또한 좋지는 않겠지. 그런 걸 생각하면, 그냥 그렇게 적당히 말하고 마는 것이 모두에게 좋은 일일 거라는 내 나름의 배려다.
그와 헤어진 지 50일이 조금 넘게 지났다. 그 사이 나는 그를 만나러 그의 봉안당에 다섯 번 다녀왔다. 물론 앞으로 내내 열흘에 한 번 꼴로 가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최소한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그를 만나러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언제부턴가 나는 봉안당에 그를 만나러 가는 것을 '데이트'라고 부르고 있다. 실제로 그를 만나러 가는 길에는 제법 마음도 설레고 두근거리기도 한다. 아주 예전 처음 연애를 시작하던 그때처럼. 그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건 좀 안타깝지만, 내가 그의 목소리를 기억하고 있고 내가 하는 말에 그가 뭐라고 대답할지를 뻔하게 알고 있으니 그것도 어떻게든 할 수 있다.
한 달에 한 번 만나고, 그 외의 시간은 서로 떨어져 내내 그리워하고. 뭐, 이만하면 월말부부라고 불러도 되지 않을까. 그냥 그렇게 생각해 버리기로 한다. 내 마음대로. 아직은 받아들일 수가 없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