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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May 12. 2023

얼굴이 큰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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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1년째 그의 책상에 둘 꽃을 사다 나르면서, 내게는 몇 가지 꽃을 고르는 기준이 생겼다. 그중 하나가 '얼굴이 큰 꽃은 웬만하면 사지 않는다'는 것이다. '얼굴이 크다'는 것은 꽃송이가 크고 실해서 대 하나에 한 송이가 겨우 달리는 종류의 꽃들을 말한다. 백합이라든가, 튤립이라든가, 작약, 수국 등.


이게 무슨 외모지상주의적인 발언이냐는 말이 나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게 그렇지가 않다. 저 '얼굴이 큰 꽃'의 부류에 속하는 꽃들은 하나같이 예쁘다. 당연하다. 다른 꽃들이 두 송이 세 송이씩 모여서 할 일을, 저 꽃들은 한 송이 단독으로 해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머리수가 적어도 존재감이 대단하고, 그 미모 또한 압도적인 경우가 많다. 작고 옹기종기한 꽃들 한 다발보다 저런 꽃 서너 송이가 더 풍성해 보이고 '있어' 보이는 일은 의외로 자주 일어난다.


그러면, 왜 저런 꽃을 가급적이면 사지 않는가.


시드는 티가 너무 빨리, 적나라하게 나기 때문이다. 근 1년간 꽃을 사면서 내게 가장 큰 마음의 상처를 준 꽃이라면 단연 사온 지 사흘 만에 시들어버린 수국을 들 수 있겠다. 그 후로 알게 된 사실이지만 수국은 '원래 그런 꽃'이며, 의외로 까다로워서 전문가인 꽃집 사장님조차도 관리하는데 애를 먹는 꽃이라고 한다. 전날 저녁까지만 해도 꼿꼿하게 서 있다가 다음날 아침 톡 건드리니 꽃잎이 우수수 떨어져 버리던 튤립, 사온 그날 활짝 피었다가 마치 마리 앙투아네트처럼 그 곱던 꽃잎이 허옇게 변해 시든 작약 등 '크고 예쁜' 꽃은 경탄에 가까운 아름다움만큼이나 질 때의 상심과 슬픔이 크다. 그래서 나는 웬만하면 얼굴이 큰 꽃은 잘 사지 않으려고 하는 편이다.


지난주는 어버이날 시즌이어서 꽃집에 있는 꽃이라고는 카네이션뿐이었다. 그때 사다 놓은 카네이션이 슬금슬금 시들기 시작해서, 어제는 꽃집에 갔다가 샛노란 해바라기가 잔뜩 들어와 있는 것을 보고 눈을 빼앗겼다. 해바라기는 꽂아놓으면 며칠 정도 가냐는 내 질문에 사장님은 해바라기는 의외로 오래간다는 답을 주셨고 나는 그 말에 혹해서, 또 얼굴 큰 꽃은 웬만하면 안 산다는 내 기준 따위는 잠시 접어둔 채로 태양을 사모한 님프가 변해서 된 꽃이라는 노란 해바라기를 다섯 송이나 사 와서, 그의 책상에 꽂아두었다. 예쁜 만큼이나 저 꽃이 시들 때는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 하는 걱정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은 지금 이 순간의 아름다움이라도 실컷 봐두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얼굴 큰 꽃은 웬만하면 사지 않는다고 한 주제에, 나는 이미 그런 꽃을 너무 자주 사다 놓고 그때마다 상처받기를 반복하고 있는 것 같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알면서도 또 저지르는 게 사람이니까. 적어도 나는 그런 타입의 인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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