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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May 13. 2023

내가 만약, 외로울 때면

-395

요즘 소소하게 활동을 시작한 커뮤니티에서는 금요일 밤에 채팅방이 개설된다. '나가서 놀 기력은 없지만 불금의 밤이 가는 건 아까운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컨셉이다. 그게, 참 이상한 일이다. 정해놓고 다니는 회사도 없고 그래서 금요일 밤의 해방감 같은 것에 딱히 해당사항이 없는 나조차도 금요일 밤에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뭔가 손해를 보는 것 같다는 기분이 드는 것은.


어제 화제에 오른 것은 '노크도 하지 않고 방에 들어오는'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요즘 한참 덕질 중인 아이돌의 무대영상을 보면서 입이 찢어져라 웃고 있다가 나잇값 좀 하라는 핀잔을 들었다는 이야기부터 가족이 몇 년간 모아 왔던 만화책을 멋대로 갖다 버린 이야기 등등 온갖 이야기가 다 쏟아져 나왔다. 더럽고 치사해서 독립하고 싶지만 혼자 살게 되면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가니 차마 그럴 수도 없고, 울화가 터진다는 간증들이 줄을 이었다. 솔직히 내게는 조금 배부른 투정으로 보이는 이야기도 없진 않았다. 그러나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분들에게는 그분들 나름의 상황이라는 것이 있을 테고, 나의 그것과 일 대 일로 비교하기에는 분명 문제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슬그머니 그런 말 한마디 정도는 했다. 혼자 산다는 건, 정말로 내가 안 하면 아무도 안 한다는 뜻이라고. 내가 청소를 안 하면 집안이 엉망이 되고, 내가 빨래를 안 하면 당장 입을 옷이 없게 된다는 뜻이라고. 그 누구도 나를 위해서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해 주지 않으며, 나 스스로가 귀찮아져 아무것도 하기 싫은 순간에 그 누구도 밥 먹으라고 나를 불러주지 않는다는 뜻이라고. 맞아요 그건 그래요 하는 말들이 줄을 이었다.


그러니까, 이런 식이다. 외로움과 불편함은 그야말로 동전의 양면 같은 것이다. 누군가와 함께 산다는 것은 많은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퍼스널 스페이스라는 말을 흔히 하지만 그런 것은 종종 무시당하기 일쑤다. 상대를 위해 내 기호를 죽여야 하고, 상대를 위해 내 성질을 참아야 하는 순간은 언제나 발생한다. 그 모든 것들을 감수하며 산다는 것은, 실은 굉장히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그래서 아마도 '이 꼴 저 꼴 안 보고 조용히 혼자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 또한 그런 생각을 하던 때가 있었으니까.


다만 그렇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그 누구도 나를 귀찮게 하지 않는 호젓하고 자유로운 생활을 위해서는, 그 누구도 나를 위해 마음을 써주지 않는 공허한 시간을 함께 보낼 각오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세상엔 너무나 많은 사람이 살고 있으며, 그중 나 하나쯤 외로움과 슬픔에 시들어간다고 해도 그것에 관심을 두는 타인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자유롭기 위해서는 필요 이상으로 어른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나 또한 아직은 그런 단계까지는 이르지 못한 것 같고.


외롭지 않으면서도 자유로운 생활. 듣기에는 더없이 좋은 이 말은, 그러나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만큼이나 양립하기 어려운 말일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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