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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May 14. 2023

400일

-396

날짜를 세는 방식에 따라 하루이틀 정도의 차이는 있다. 보통의 날짜 세는 어플이나 계산식이 사용하는 당일을 1일로 잡고 날짜를 세는 방식에 따르면 오늘은 그가 떠나간 지 402일이 되는 날이다. 그러나 그가 떠나간 다음날인 4월 9일을 1일로 세는 내 식의 계산법에 따르면 오늘이 400일째 되는 날이다. 사귀기 시작할 때야, 좋은 일이니까 '오늘부터 1일' 하는 식으로 날짜를 늘릴 수 있겠지만 이 일에 관한 한 나는 그렇게까지 해야 할 필요성을 별로 느끼지 못하겠으므로.


아무튼 그래서, 오늘은 그가 떠나간 지 꼭 400일이 되는 날이다.


그 숫자를 생각하니 순간 가벼운 멀미가 난다. 400일. 그 적지 않은 나날을, 나는 끊임없이 울고 괴로워하고 몸부림치고 멍해 있기를 반복하면서 어떻게든 살아내려고 노력해 왔다. 그러던 하루하루가 400일이나 내가 걸어온 저 편에 쌓여있다는 사실이 좀 믿어지지가 않는다. 그래서 오늘 아침은 내내 기분이 좀 멍하다. 이건 또 그가 떠나간 지 1년이 되었다는 것과는 조금 다른 소회여서 정확히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를 모르겠기도 하다.


그래서 그 400일의 시간 동안 나는 조금은 나아졌는지. 많이 무뎌지긴 했다. 그러나 그걸 '나아졌다'라고 표현하는 게 맞을까. 뭐랄까, 1년 전 그날 이후로 내 삶의 형태 자체가 변해버렸다는 느낌이다. 그 이전의 나와 그 이후의 나는 좀 다른 사람이 된 것 같다. 그래서 뭐가 낫고 뭐가 못한 지를 파악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다만 지금의 나는 급작스레 그가 떠나고 딱히 정서적인 도움을 받을 만한 가까운 사람이 없는 상태에서 내가 나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한 결과이기는 할 것이다. 그렇게는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 갔다. 내 인생이 언제 어떻게, 어떤 식으로 끝날지는 모르지만 앞으로도 또 새로운 400일이 흘러가겠지. 그리고 400일이 800일이 될 때쯤엔, 지금보다도 조금 더 무뎌지고 무던해진 내가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 본다.


애를 쓰지 않아도, 발을 동동 구르지 않아도 시간은 알아서 흐른다. 그 사실은, 참 다행이기도 하고 퍽 서글프기도 하다. 이제 당신이 나를 사랑하지 않아 내게는 세상이 끝장났는데도 왜 태양은 계속 빛나고 파도는 계속 몰려오느냐는 어느 올드팝의 가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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