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당신에게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득 May 15. 2023

없는 게 메리트인 건 맞는데

-397

아침에 일어나 집안 정리를 하고 홈트를 하는 약 한 시간 남짓 유튜브 알고리즘이 추천해 주는 노래를 듣는다. 그러다가 아 이 노래 제목이 이거였어? 하고 알게 되는 노래도 있고 한동안 까맣게 잊고 지내던 노래를 다시 만나 반갑기도 하고 가끔은 몰랐던 노래를 알게 돼서 즐겁기도 하다. 그래서 이 '영험한' 알고리즘이 내게 어떤 노래를 추천해 주는지를 기다리는 것은 아침의 소소한 즐거움 중의 하나다. 오늘 유튜브가 내게 추천해 준 곡은 옥상달빛의 '없는 게 메리트'였다.


없는 게 메리트라네, 난.


으로 시작하는 도입부 정도는 알았다. 난 이 가사를 오독해서, '나한테는 메리트 같은 건 없다'는 다소 비관적인 가사로 알아듣고 있었다. 그래서 '수고했어 오늘도' 같은 예쁜 노래만 하는 줄 알았더니 이렇게 조곤조곤하고 찬찬한 목소리로 의외로 비관적인 노래도 하는 사람들이구나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 아침에 알았다. 저 가사는 '나한테는 메리트 같은 건 없다'는 뜻이 아니라, '난 가진 게 없고 그게 메리트다'라는 거의 정 반대의 뜻이라는 걸. 참 우리나라 말 어렵다. 그런 생각을 다시 한번 했다.


저 도입부에 이어지는 가사는 이렇다. 있는 게 젊음이라네, 난.


여기까지 들으면 뜻이 명확해진다. 난 아무것도 가진 게 없어서 새삼 더 잃을 것도 없다는 게 메리트이고, 그런 내가 가진 건 젊음밖에 없다는. 이쯤 되면 이 노래는 가진 것 개뿔 없어도 젊으니까 기죽지 말고 부딪혀보자는 뜻이 아닐 수가 없다. 나름 응원가였던 셈이다.


그런데, 없는 게 메리트인 것까지는 맞는데 이젠 더 이상 젊지도 않으면 어떡하지. 문득 그런 생각에 잠깐 입맛이 썼다. 그러니까 난 없는 게 메리트인데 그 와중에 젊음까지 없는 셈이니 그야말로 가진 게 아무것도 없다는 점 하나밖에 메리트가 없는 셈이다. 이나마도 없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하기에는 어째 참 입맛이 써서, 그냥 하하 웃고 말았다. 흔히 백세 시대라고 한다. 그리고 지금의 내 나이는, 뭐 이젠 더 이상 젊다느니 어리다느니 하는 말까지는 붙일 수 없겠지만 그래도 요즘 세상에 또 그리 많지만은 않은 나이인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룬 것도 가진 것도 없는 주제에 나를 지탱해 주던 사람마저 놓쳐버린 이 '중년'의 삶이 새삼 마음속에 씁쓸하게 받히는 것도 어쩔 수 없는, 그런 아침이다.


오늘은 눈물을 참고 힘을 내야겠다고,  포기하기엔 아직은 내 젊음이 찬란하다고 노래는 말하지만 더 이상 찬란하지 않는 나는 어떻게 이 시간을 건너가면 될까. 누가 좀 가르쳐줬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400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