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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May 17. 2023

마음이 꺾일 때

-399

지난 카타르 월드컵 최고의 히트 상품은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그 문구가 아니었나 싶다. 듣기로는 이미 월드컵 전부터도 알음알음 쓰이던 문구라고는 하지만 월드컵을 통해 전 국민적으로 알려지기도 했고 그 상황과 딱 맞아떨어지는 그 절묘한 비장미 덕분에 더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게 된 게 아닌가 싶다. 실제로 우울하고 답답해서 한숨을 쉬고 땅을 파다가 그래,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지 하고 소리를 내서 중얼거려 보면 아주 조금의 용기라도 돌아와서 일단 뭐라도 먹고 뭐라도 해보자는 기분이 조금은 생기기도 하는 것 같고.


꼭 일주일 전 가까스로 시간을 얼마간 벌어놓은 그 일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앞은 캄캄하고 해결책은 잘 보이지 않는다. 이래서야 최악이 다가오는 순간을 며칠씩 며칠씩 늦추고 있는 것에 불과한 게 아닌가 하는 무서운 자각이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을 찌르고, 그런 순간에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진다. 마음이 뚝뚝 꺾여 부러져 나가는 게 실시간으로 느껴진다고나 할까.


그가 떠나고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절감할 때는 이런 순간이다. 혼자 밥을 먹을 때가 아니라. 하루를 마치고 혼자 잠자리에 들 때가 아니라. 외출했다가 돌아온 집에 아무도 없고, 황량하게 불이 꺼진 조용한 집이 나를 맞을 때가 아니라. 아무리 생각해도 답은 없고 점점 상황은 나빠져만 가는 것 같은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어서 마음이 저 깊은 곳으로 기어들어갈 때, 옆에서 언제나 다른 방법은 있다고, 한숨 자고 일어나서 혹은 뭐라도 먹고 생각해 보자고 말해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 그가 하던 그 역할까지도 이젠 내가 나를 반반 나눠서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 그러나 나는 역시 그가 하던 것만큼 다정하게 나 자신을 보듬어주지 못한다. 그래서 실은 이번주 들어 내내 우울한 중이다. 사흘이나 연달아 마신 맥주도 어쩌면 그것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여기까지 글을 써놓고, 문득 봉안당에라도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봉안당 안에 있는 그의 사진은 역시나 내가 그의 차에서 찾아낸 그 증명사진이라 내 책상에 놓여있는 그 사진과 완전히 똑같지만, 간다고 해서 목소리라도 듣고 올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가서 무슨 말이라도 하고 오면 좀 낫지 않을까. 뭐라도,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그런 조그만 희망이라도 얻어올 수 있지 않을까. 뭐 그런 생각을. 어차피 오늘 점심엔 며칠 전 끓여놓은 카레나 데워서 먹을 생각이니 밥 먹을 걱정도 크게는 하지 않아도 되겠고.


정말이다. 당신은 뭘 믿고 이렇게 어설프고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나를 남겨놓고 그렇게 훌쩍 떠났냐고 좀 따지고 싶다. 가던 그 걸음, 발이 떨어지긴 하더냐고. 아니었을 걸 알지만, 그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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