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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May 22. 2023

정말, 어떻게든 될까?

-404

서울에서, 회사 같지도 않은 회사 하나를 창업해 어떻게든 붙들고 있어 보려고 온갖 안간힘을 쓰던 시절의 이야기다. 금요일 6시가 지나면 그는 언제나 '바람 쐬러 가자'며 나를 채근했다. 목적지는 다양했다. 그때 출발하면 다음날 아침쯤에 돌아올 수 있는 곳도 있었고 아예 하루이틀 정도는 자고 올 계획으로 짜놓은 간단한 여행 스케줄일 때도 있었다. 그때의 내 반응은 대개 비슷했다. 아니 다음 주에 이런저런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데 그래놓고 가긴 어딜 가냐고. 그러면 그의 반응은 언제나 비슷했다.


사람 죽으란 법 없어. 어떻게든 돼.


그때는 그의 그런 말들이 지독한 무신경함으로 느껴져서 정색하고 화가 날 때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생각한다. 그 자신도 그렇게까지 어른은 아니던 그 시절에, 그는 자신보다도 어리던 내 앞에서 참 부단히 '센 척'하고 싶었구나 하고. 그러기 위해서 주말이라도 잠깐 어깨를 짓누르는 그 모든 것에서 잠시 눈을 돌리고 싶었구나 하고. 그러나 지금에서야 가까스로 알게 된 그 사실을 지금보다도 한참이나 어렸던 그때 이해하는 건 무리였고 대부분의 경우에 나는 그 말에 곱게 반응을 하지 못하고 짜증을 내고 화를 냈다. 그러느라 싸운 적도 많았다.


이렇게 혼자 남아 도대체 이 일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앞이 막막한 순간에, 나는 가끔 그가 그때 하던 그 말을 떠올려본다. 정말 사람이 죽으란 법은 없는 게 맞을까. 어떻게든 되는 게 맞을까. 천지사방이 다 너 안 그래도 사는 거 힘들어 보이는데 그냥 이쯤 살고 곱게 죽는 게 어떠냐고 사람을 물어뜯는 것 같은 시간이지만, 그래도 버티다 보면 어떻게든 되는 게 맞을까.


스무 살 남짓 무렵 겉멋이 들어 샀다가 반해버린 김수영 시인의 시선집에서 발견한 내 인생의 시구가 있다. '바람은 딴 데서 오고 구원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오고 절망은 끝까지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라는 문구가 그것이다. 이 문장에서 내 마음을 끌어당긴 것은 '구원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오고'라는 부분이다. 아닌 게 아니라 정말 구원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예기치 않은 방법으로 오곤 했다. 지금까지도 쭉 그래오긴 했는데 과연 이번에도 그럴까.


그렇게라도 좀 믿어보고 싶긴 하다. 그런 불확실한 사실조차 붙들지 않고는, 이 시간을 버텨내기가 많이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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