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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May 24. 2023

1년 살이

-406

지난 4월에 일어난 일이 너무 많아서 요 얼마간은 돌아서면 '무엇무엇한지 1년'의 연속이었다. 그 각각의 사실들이 나름의 의미를 가지는 것도 아마 올해까지겠지. 내년만 되어도 그 의미는 많이 희석되지 않을까 싶다. 당장 그가 떠나간 날을 챙기는 것 외에 올해 생각한 그 모든 것들을 내년에도 챙기고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뭐 그런 생각을 한다.


그중에는 작년 이맘때 우리 집에 온 화분 두 녀석의 1년 살이도 포함되어 있다.


내 손으로 어설프게 분갈이를 해놓고 애면글면, 혹시 말라죽는 건 아닐까 걱정하던 다육이는 지금까지 잘 살아있으니 그냥 잘 살아있는 걸로 봐도 무방할 것 같다. 지난겨울 추위도 무사히 잘 버텨내고, 꾸준히 잎이 말라 떨어지면서도 그만큼 새 잎을 틔우며 살아줘서 나는 이 녀석에게 참 고맙다. 이 녀석은 그의 삼우제날 봉안당에 갖다 놓을 꽃을 사려다가 덤으로 업어왔고, 그래서 이 녀석이 내 곁에서 오래 버티지 못하고 떠났다면 아마 나는 많이 슬펐을 것이다. 다만 요즘의 걱정은 한 포기가 자꾸 비스듬히 눕는다는 것이다. 인터넷을 찾아봐도 뾰족한 답을 찾지 못했다. 겨우내 볕을 바싹 쬐어주지 못해서 그런가 싶은 마음에 요즘은 일부러 볕 잘 드는 창가에 창문까지 열어놓고 이렇게 저렇게 방향을 돌려가며 내놓아주고 있지만 누운 포기는 좀체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걸 이렇게 놔둬서 될 일인가 하는 생각을 한다.


그의 탄생화라서 작년 5월 31일에 들여온 무화과 역시도 나처럼 재주 없는 식물집사 밑에서 안 죽고 잘 자라주고 있다. 이 녀석은 꽃눈 두 개를 만들어서 겨울을 났는데 그중 하나에서는 지난겨울이 끝나갈 무렵 드라마틱하게 잎이 피기 시작했지만 그중 하나는 결국 잎이 피지 않았다. 이 녀석이 판단하기에 눈 두 개를 다 틔우는 것은 무리가 있던 모양이다. 제가 다 알아서 내린 결론이겠지만 잎이 피지 않은 채 고스란히 멎어버린 눈을 보는 건 가끔 좀 마음이 쓰릴 때가 있다. 그래도 올해 들어 새로 난 잎들이 무성하게, 씩씩하게 잘 자라주고 있어서 마음의 위안이 된다.


고작 손바닥만 한 화분 두 개를 키우면서 이렇게나 전전긍긍하는 주제에, 봄이 되고 날씨가 좀 따뜻해졌다고 셋째를 하나 들이고 싶어서 들먹들먹하는 중이다. 지금 있는 두 녀석은 푸릇푸릇하기만 한, 그러니까 중고등학생 정도 된 한참 말 안 듣는 아들 같은 느낌이니 소담한 꽃이 피는 딸 같은 화분이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요즘 심심찮게 든다. 내 마음에 와서 박힌 것은 키우기도 쉽고 환경만 적당하면 사시사철 꽃이 핀다는 블루 데이지인데, 조금 더 두고 보자 두고 보자 하면서 계속 미루고 있다. 내가 과연 지금 있는 이 녀석들 외에 화분 하나를 더 들여와도 괜찮을까 하는 문제에 확신이 서지 않아서.


혼자 지내는 분이시라면, 그래서 뭔가 적적하지만 사방팔방 돌아다니는 개나 고양이는 뭔가 부담스럽다는 분이 계시다면 화분 하나 키워보시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식물은 외출했다 돌아오는 나를 현관 앞까지 마중 나오지도 않고 내 손에 다정스레 얼굴을 부비지도 않는다. 그러나 겨울을 지나 봄이 올 때, 굳어있던 가지에서 첫 잎이 트는 그 순간을 목격하는 환희가 있고 무심한 내 곁에서 조용히 숨 쉬며 살아가 주는 것으로도 많은 위로를 주니까. 그건 또, 개나 고양이가 주는 것과는 조금 다른 형태의 사랑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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