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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May 26. 2023

버티러 간다

-408

버티면 어떻게든 된다는 말은 정확히 누가 어디서 한 말인지 모르겠다. 나 또한 워낙 다양한 사람에게서 다양한 방식으로 이 말을 들은 터라 누가 원조인지도 잘 모르겠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정말 죽도 밥도 안 될 것 같은 시기에 이 말만큼의 막막한(이 말의 좋은 점은 그야말로 지나치게 명쾌해서 잘 믿어지지 않는 뚜렷한 위로가 아니라 어찌 들으면 위로 같기도 하고 어찌 들으면 아닌 것 같기도 한 애매한 위로라는 점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위로를 주는 말도 참 드물다는 것이다.


내가 기억하는 버전은 그렇다. 버틴다는 것은 시간을 버는 것이고, 시간을 번다는 것은 그 사이 무슨 일인가가 일어날 가능성을 번다는 것이다. 사람의 인생이 뻔해서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을 것 같지만 그게 꼭 그렇지는 않다고, 그래서 어떻게든 버텨서 시간을 번다는 것은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해결책이 나타날 가능성을 버는 것이라고. 나는 지금껏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희망이 있다는 말 중에 이렇게 마음에 와닿는 말을 별로 들은 적이 없다.


4월부터, 아니 그 이전부터 계속 나를 괴롭히던 일의 디데이가 또 다가오고 있다. 현재로서는 어디서 요술램프라도 하나 줍지 않는 이상 이 일을 드라마틱하게 해결할 방법은 없고, 그저 버텨서 시간을 버는 것밖에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그게 지난 며칠간 새벽에 잠을 설쳐가며 내린 결론이다. 디데이는 아직 며칠 남았지만, 그냥 오늘 시간을 좀 더 달라고 한 번 질러보려고 한다. 듣는 입장에서도 날짜 마주쳐서 그런 소리를 듣는 것보다야 며칠이라도 앞당겨서 듣는 편이 나을 테니까.


물론 이런 결심을 하는 와중에도 내 머릿속에는 이건 그냥 시간 끌기일 뿐이라는 비관론이 고개를 쳐든다. 뭐 사실 그럴 뿐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래도, 정말 죽도 밥도 안 돼서 최후의 상황으로 치닫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지 최대한 '존버'해서 어떻게든 일발역전의 기회가 생길 가능성을 엿보고 싶다. 아무리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아서, 지금껏 일어나지 않은 일은 어지간해서는 일어나지 않는 게 인생이라고 하더라도. 지금껏 내 인생에 찾아왔던 몇 안 되는 '좋은 순간'은 다 그런 식으로, 그 직전까지도 아무런 기척이 없다가 갑자기 찾아왔었기 때문에.


오늘을 버티면 월요일까지는 연휴다. 또 어떻게든 버텨 보자. 살아있으면, 버티다 보면 무슨 좋은 수가 날 지도 모르니까. 그가 늘 하던 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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