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당신에게

강제적 미라클 모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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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나는 아침잠이 많은 편이다. 회사 생활을 접고 프리랜서로 일하기 시작한 이래 내 기상시간은 늘 아홉 시였다. 업무상 미팅이 잡힌다거나 집에서 좀 일찍 나서야 해서 일곱 시나 여덟 시쯤 일어나야 할 일이 생기면 그것 자체가 내게는 스트레스였다. 그가 운전하는 차 조수석에 구겨박힌 채 있는 대로 인상을 쓰고는 꾸벅꾸벅 졸면서 목적지까지 갔다. 잠이 덜 깬 상태의 내가 제법 흉폭하다는 걸 아는 그는 그런 내게 별로 말을 걸지 않았다. 내게 미라클 모닝이니 아침형 인간이니 하는 건 어디까지나 남의 이야기였다.


그러던 나는 요즘 한 달째 이르면 다섯 시 반, 늦어도 일곱 시에는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고 있다.


생각건대 가장 큰 이유는 일찍 자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있던 때는 밤 열한 시쯤이 되면 그때부터가 야간 일정을 시작하는 기분이었다. 우리는 침대 헤드에 등을 기대고 앉아 vod로 풀린 영화들을 봤고 요즘 유행하는 ott 드라마들을 하나씩 챙겨봤다. 그러다가 재미있는 작품을 만나면 새벽 네 시 다섯 시까지도 텔레비전을 보다가 늦게야 잠이 들곤 했다. 킹덤, 스위트홈, DP, 오징어 게임, 지금 우리 학교는 등등을 우리는 그런 식으로 봤다. 그러니 당연히 아침에 일찍 일어날 수가 없었다.


새벽에 보는 영화와 드라마들은 그와 나의 소소한 즐거움이기도 했다. 어제 한참 재미있는 드라마를 보다가 끝까지 다 보지 못하고 잠든 날이면 다음날 그다음 이야기가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기대에 설레었었다. 그렇게 정주행을 끝나고 나면 한참 동안 캄캄한 어둠 속에서 이 드라마는 어떤 부분이 재밌었고 어떤 부분이 어떻게 되었으면 더 좋았을 뻔했고 운운하는 이야기들을 한참이나 나누다가 잠이 들기도 했다. 우리가 새벽에 아무것도 보지 않고 잠드는 날은 아침 일찍 일어나 어딘가를 갔다 와서 몹시 피곤하거나, 둘 중 누군가가 아프거나, 혹은 싸웠을 때뿐이었다. 오랫동안 나에게 심야에서 새벽까지의 시간은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멀티플렉스 영화관이었다.


요즘의 나도 열한 시쯤엔 눕는다. 그러나 더 이상 나는 새벽 서너 시까지 뭔가를 시청하느라 깨어 있지 않는다. 주변의 적막을 견디지 못해 텔레비전을 틀어놓은 채 한참을 뒤척이다가 잠든다. 그러고 나서 눈을 뜨면 어김없이 잠을 좀 못 잤다 싶으면 다섯 시 반, 조금 잤다 싶으면 일곱 시다. 일찍 자기 때문에 일찍 일어나지는 건지 일찍 일어나기 때문에 일찍 자게 되는 건지 어느 쪽이 먼저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가 불분명한 것처럼.


기상 시간이 당겨져서인지 요즘 하루가 부쩍 길다. 내 몸에 익은 시간에 비해 두세 시간 정도는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기분이다. 하고 있는 일 때문에 연락을 하려다가 시계를 보면 여덟 시도 채 안 된 시간이라 당황한 기억도 이미 몇 번이나 있다. 내가 다시 새벽에 뭔가를 보기 위해 깨어 있는 날이 올까. 그 때문에 다음날 늦잠을 자게 되는 날이 올까. 개봉하면 함께 보려던 영화들이 하나씩 개봉했거나 개봉 날짜가 잡히는 걸 보고 있으면 그런 의문이 든다. 그가 빠져나가 버린 내 인생은 어디까지 '원상복구'가 될 수 있을까.


책상 위에 놓인 그의 액자를 향해 중얼거린다. 오빠. 생각보다 죽고 싶고 그렇지까진 않은 것 같은데, 대신에 사는 게 재미가 없다. 하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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