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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May 30. 2023

걱정이 없으면 배도 안 고프다

-412

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 올라와 혼자 동동거리며 살던 시절에 가졌던 의문이 하나 있다. 왜 통장에 잔고가 두둑할 때는 하루종일 굶어도 배고픈 줄도 모르다가 월급날이 다가와 천 원짜리 한 장에 벌벌 떨어야 되는 시기가 되면 밥을 먹고 돌아서도 금방 배가 고파지는가 하는 거였다. 그때는 어리고 철없어서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꼭 그런 게 아닌 것도 같다.


요즘 모종의 일로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고, 그래서 먹는 것에 딱히 조심을 하지 않은 결과 살이 좀 쪘다는 말을 며칠 전 브런치 지면을 통해 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건 엄밀히 말해서 틀린 말이다. 나는 습관적으로 뭘 먹어야 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 말인 즉, 자꾸 허기가 지기 때문에 뭔가를 먹게 된다는 쪽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지난 두어 달간, 나는 저녁 대여섯 시쯤이 되면 견딜 수 없는 공복감에 시달려서 자꾸 뭔가를 주워 먹기를 반복했다. 제일 많이 빠졌던 지점에서부터 2, 3킬로그램 정도 불어나버린 몸무게는 그 결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제도 연휴 내내 저만치 밀어놓고 있었던 조그만 문제 때문에 아침부터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낭장 내일 연휴가 끝나고 나면 그 일을 맞닥뜨려야 할 걸 생각하니 쉬는 날이 하나도 쉬는 날 같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하루종일 이런저런 골질을 한 끝에 그 일을 해결해놓고 나니 거짓말처럼 뭔가를 먹고 싶은 기분이 싹 가셨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알 수 없는 출출한 기분에 뭐라도 하나 먹어야 하나 하는 생각만이 머리에 가득하던 것이 무색하게도.


퉁퉁하게 살이 오른 건 부잣집 사람이라는 건 다 옛날 말이고, 요즘 있는 집 사람들은 다들 날씬하고 없이 사는 사람들이나 살이 찐다는 말을 흔히 듣는다. 몸매를 관리하는 데도 그만큼 돈과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라는 게 그 이유라고도 한다. 그러나 그 이유가 다는 아닌 것 같다. 사는 게 마음대로 되지 않아서, 먹고 싶은 거라도 먹어야만 지금 이 순간을 버틸 수 있는 처지에 있는 사람들만 살이 찐다고 말하는 게 더 맞는 표현이 아닐까. 그런 거라면 내 다이어트는 정말로 요원하지 않을까. 뭐 그런 생각을 해 본다. 연휴도 끝나버린 이 우울한 화요일 아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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