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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May 31. 2023

간밤에 뭔 일이 났던 모양인데

-413

원래 열한 시쯤 잠이 들어 아침 여섯 시쯤에 눈을 뜨던 나의 '건강한' 수면 패턴은 이제 살금살금 망가지기 시작하고 있다. 그래서 요즘은 열두 시에서 한 시 정도에 자리에 눕고 일곱 시 반에서 여덟 시 정도에 눈을 뜨고 있다. 아마 예민하신 독자님들은 내가 브런치에 글 올리는 시간이 한 시간 정도 늦어졌다는 사실을 느끼고 계실 것이다. 대충 그런 이유에서다.


덕분에 오늘 온 나라를 발칵 뒤집어놓은 경계경보 오발령 사건도 나는 실컷 잘 것 다 자고 눈을 뜨고 나서야 알았다.


물론 내가 사는 곳은 서울이 아니어서 내가 그 시간에 눈을 뜨고 있었더라도 그 문자를 받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어찌 됐든, 내가 덜 깬 잠에 취해 비몽사몽 일어나느냐 마느냐를 고민하고 있던 그 순간에 이런 일이 벌어졌고 그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우왕좌왕 갈팡질팡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좀 기묘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정말 나 하나가 어찌 살든 세상은 제 페이스대로 돌아간다는 것, 막말로 내가 잠들어 있는 사이에 세상은 훅 망해버릴 수도 있다는 것, 그리고 설령 그런 일이 벌어진다 해도 나는 그 누구에게도 이런 법이 어딨냐고 따질 수 없을 거라는 것. 그런 무용한 생각들이 잠시 머릿속을 어지럽힌다.


인생은 어지간해서는 변하지 않고 어제 일어나지 않은 일이 오늘 일어나는 일 같은 건 웬만해서는 생기지 않는다는 생각을 처음 한 것이 30대 중반 정도였던 것 같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렇다. 지금껏 일어나지 않은 일이 앞으로도 일어날 일은 극히 드물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인생이란 뭐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순간의 연속이기도 하다. 나는 그 사실을 작년에 알았다. 4월 7일까지 갈 것도 없다. 4월 8일 아침, 이미 벌어질 일이 다 벌어지고 나만 모르고 있었던 그 순간까지도 나는 그가 단순히 늦잠을 자는 거라고 생각했을 뿐 그가 몇 시간 전에 이미 나를 떠나버린 후였다는 걸 모르고 있었으니까. 나는 맹세코 내 집 내 침대 위에서 그런 식으로 숨을 거둔 그를 목격한 사람이 내가 될 거라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 순간처럼 말이다.


오늘 아침의 뜬금없는 경계경보처럼, 그런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기대조차 접어두었던 어떤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나서 지금 나를 괴롭히는 이런저런 문제들이 감쪽같이 사라지는 그런 상상을 해 본다. 그것만으로도 조금 기분이 좋아지니까. 물론 피 같은 아침잠을 빼앗긴 분들이 이 글을 보신다면 당신은 안 당해봤으니까 그런 태평한 말을 하는 거라고, 그런 말을 하실 수도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런 독자님이 계시다면 나의 철없음에 미리 사과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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