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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Jun 01. 2023

목이 꺾인 꽃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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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시드는 것에도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내가 본 가장 극적인 시듦은 단연 튤립과 작약이었는데, 이렇게까지 드라마틱하게 시드는 꽃은 오히려 흔치 않고 대부분의 꽃들은 가장자리부터 꽃잎이 말라간다거나 목이 꺾여 봉오리가 쳐지는 식으로 얌전하게 제 수명의 끝을 받아들인다. 그의 책상에서 2주 정도를 버틴 폼폰소국 역시 위에서 보면 아직도 쌩생하지만 옆이나 아래에서 보면 가장자리부터 꽃잎이 갈색으로 시들어가고 있어서 이제 또 새 꽃을 사 올 때가 되었구나 하고 생각했다.


이번에 사 온 꽃은 리시안셔스다. 여러 가지 색깔 중에 흰색과 핑크색이 나는 것으로 섞어서, 살짝 소녀취향으로 사 왔다. 리시안셔스 또한 내게는 썩 오래 가지는 못하는 꽃이라고 인식이 박혀 있다. 이 녀석의 시드는 기미는 목에서 온다. 한 번 목이 꺾이면 그 길로 좀체 살아나지 못하고 고스란히 시들어버리던 기억이 있다. 집으로 가져온 리시안셔스 중에도 한 두 송이 정도 목이 꺾인 녀석이 있어서 아 얘네는 금세 시들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이번 주의 꽃병 관리 팁은 꽃대를 너무 길게 자르면 안 되고, 되도록이면 송이별로 꽃대를 잘라서 나눠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어쨌든 이 꽃들은 뿌리를 박고 살아있는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물을 빨아올리는 힘이 약할 수밖에 없고, 꽃대가 길거나 한 꽃대에 지나치게 많은 꽃들이 붙어있으면 그 얼마 안 되는 물을 꽃들이 나눠 마셔야 하기 때문에 빨리 시든다는 얘기였다. 그래서 나는 사온 리시안셔스들을 전부 한 송이씩 잘라서  나눠 꽂았다. 그러면서도 별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리고 조금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목이 꺾여서 연방이라도 시들 것 같던 두 녀석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 것이다. 연신 흐느적거리던 목이 도로 빳빳해졌고 둘 중 하나는 봉오리가 슬쩍 벌어져 피려는 낌새까지 보이고 있다. 목이 꺾인 꽃은 그 길로 시드는 것밖에는 다른 길이 없다고 생각했던 내가 무색하게도, 이 녀석들은 꽃대를 조금 짧게 자르고 꽃대를 나누어서 제가 알아서 물을 먹게 해주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살아나기도 하는 모양이다.


뿌리가 잘리고 물에 꽂힌 저 연약한 꽃들조차도 저렇게 조금이라도 더 살아보려고 열심인데. 나도 좀 정신을 차려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뭐든, 어떻게든 되겠지. 그런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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