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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Jun 06. 2023

닷새 걸린 욕실 청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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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그가 씻으러 들어가서는 한 시간이 넘도록 나오지 않을 때가 있었다. 그러면 그날은 그가 각을 잡고 욕실을 청소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렇게 한 시간도 넘게 청소를 하고 나온 욕실은 그야말로 광이 났다. 학창 시절 선생님들의 단골 멘트를 빌자면 '바닥에 떨어진 밥알도 주워 먹을 수 있을' 정도였다. 물론 그렇게 용을 쓰며 청소를 하고 나면 그는 눈앞이 핑 돈다며 욕실 문턱에 한참을 주저앉아 숨을 고르다가 나오곤 했다. 그렇게 급작스레 떠나기 얼마 전까지도 그랬다.


내 경우는 그만큼 꼼꼼하지도 못하고 뒷손도 없는 터라, 청소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으면 하루에 벽 하나씩을 닦고 마지막날 바닥을 닦아서 총 닷새에 걸쳐 천천히 욕실을 치운다. 그나마 그가 있을 땐 쓰지도 않던 전동 솔을 가지고 슥슥 문지르고, 물로 헹궈낸 후에 곰팡이 제거제를 뿌리는 식이니까 그가 하던 청소 난이도에 비하면 비교할 수조차 없는 셈이다. 크지도 않은 평수의 집이니 욕실 또한 손바닥만 한데, 그걸 무려 닷새에 걸쳐 찔끔찔끔 치우고 있노라면 이게 도대체 뭐하는 짓인가 싶어 쓴웃음이 나올 때가 있다.


어제 부로 벽면 네 개는 전부 닦았고 오늘 바닥을 닦고 예의 배수구에 살고 계실 처녀 귀신만 보내주면 욕실 청소는 끝난다. 그가 있을 때 왜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그런 생각을 한다. 이왕 살 전동솔이었으면 그때 살 걸. 그랬으면 용을 쓰다가 눈앞이 핑 돌 정도로 무리하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이왕 살 곰팡이 제거제였으면 그때 살 걸. 그랬으면 타일의 눈금과 눈금 사이에 낀 얼룩을 닦아내느라 팔이 다 뭉칠 정도로 고생하지 않았을 텐데. 하루에 벽 하나씩만 닦고 마지막날 바닥을 닦아서 욕실 하나 청소하는 데 닷새가 걸려도 사는데 아무 지장 없는데, 그때 그냥 무리하지 말고 그러라고 할걸. 아니, 그냥 이런 거였으면 그 청소 내가 할 테니까 하지 말고 놔두라고 할걸. 그런 후회가 꼬리에 꼬리를 문다.


장판 마감재가 들고일어나면 적당히 박스 테이프를 붙이고, 욕실을 청소해야겠으면 닷새쯤 들여서 하루에 벽 하나씩만 닦고, 먹을 게 없으면 재 놓은 스팸이나 대충 구워서 한 끼 먹고. 그러고도 살아지는데. 그러고도 충분히 살 수 있는데. 나는 왜 그 사람을 그렇게나 괴롭혔을까. 괴롭도록 내버려 두었을까. '바닥에 떨어진 밥알도 주워 먹을 수 있을'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깨끗해진 욕실을 둘러보다가, 나는 오늘도 그런 후회를 한다. 그러지 말걸,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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