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당신에게

머리는 물 안 줘도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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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브런치 글 목록을 죽 뒤져보다 보니 내가 4월 중순쯤에 머리를 잘랐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게 벌써 두 달 전이나 됐구나. 그런 생각을 한다.


'고작' 두 달이 지났다. 사실 '벌써' 두 달인 것 같기도 하지만, 적어도 머리가 기는 문제에 한해서만은 '고작'이라고 말해야 할 것 같다. 그 사이에, 단발 정도로 잘랐던 머리칼은 또 제법 많이 길었다. 익숙해진 탓도 아느 정도 있겠지만 그날 머리를 자르고 집으로 돌아와 머리를 감으면서 느꼈던 '머리를 한 반 정도만 감는 기분' 같은 건 이젠 없다. 가뜩이나 후끈한 오후에 둘둘 말아 대충 틀어 올렸을 때 아래로 축 늘어지는 머릿단의 길이도 조금 실해져서 나는 그 두 달 사이 머리가 또 이렇게나 길었구나 하는 걸 실감한다. 정말이지 물 안 줘도 알아서 잘 자라는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그냥 미용실에 갔다 올 때만 해도 나름의 생각이 있었다. 오늘은 워낙 아무 준비도 없이 나왔으니 그렇다지만, 언제 짬 내서 스트레이트 같은 거라도 해야지. 뭐 분명히 그렇게 생각했던 기억이 있다. 미용실에 가는 것도 기본 커트가 아니라 뭐라도 하려 가려면 적지 않은 돈이 필요하고, 돈뿐만 아니라 시술받고 기다리고 하는 시간까지도 필요하니까. 그런 준비를 좀 해서, 정말로 다시 한번 예의 그 '찰랑찰랑한 생머리'에 도전하든 아니면 이 정도 길이에서 열심히 유지나 하든, 정말 뭘 좀 해야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때의 머리가 또 체감될 만큼 한참이나 길어나가는 동안 나는 또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시간만 보내고 있다.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러고 보면 뭐든 다 그런 식이다. 지금은 돈이 없어서, 시간이 없어서, 다른 데 신경 쓸 일이 많아서 안 되겠고 다음에 하자고 미뤄놓은 일들치고 그 '다음'이라는 게 와서 정말로 하게 된 일은 손에 꼽는다. 솔직히 그런 게 있기나 했는지도 모르겠다. 여유 좀 되고, 시간 좀 있고, 마음도 편안한 '그 언젠가'라는 시기가 과연 있기나 한 것인지, 그리고 그런 순간이 온다 한들 그때의 내가 그 귀찮음을 이겨내고 그 일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을지, 그런 건 역시 확신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그게 뭐가 됐든, 정말로 헤야겠고 하고 싶은 일은 그 순간에 질러야 하는 게 아닌지. 그런 생각을 한다. 물론 그래봤자 스트레이트는 한참이나 우선순위가 뒤로 밀릴 것 같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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