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취업을 해서 나보다 먼저 서울로 올라가기 전의 일이다. 우연히, 토끼를 키우는 일러스트레이터 이야기를 그린 만화책을 빌려다 같이 보게 되었다. 당시의 판본은 일종의 해적판이었고, 그래서 나중에 정식으로 라이센스 발매된 판본에서의 토끼의 이름은 코로가 아닌 센타로였다는 것 같았지만 그와 나에게 그 토끼는 영원히 코로였다. 슬램덩크의 주인공이 강백호지 사쿠라기 하나미치가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그는 그 만화책을 굉장히 좋아했다. 남자들도 귀여운 걸 좋아하는구나 하는 걸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얼마 후 그는 서울로 올라갔고, 나는 취업 선물로 서울 근처의 토끼농장 한 군데에 연락을 해 그에게 새끼토끼 한 마리를 선물했다. 농장주 분이 직접 후보 토끼 몇 마리를 데리고 그를 만나서 한 마리를 고르게 했다는 모양이었다. 흰 바탕에 검정 얼룩무늬가 있는 토끼였다. 어떡해. 얘 너무 귀여워. 나는 그의 그런 목소리를 처음 들었다. 그리고 녀석의 이름은 뭐 응당 그렇듯 코로가 되었다.
그러나 만화에서도 나오는 말이지만 토끼는 사실 난이도가 상당한 반려동물로, 초보인 그가 키우기에는 쉽지 않았다. 심심하면 케이지 안을 빠져나가 집안의 온갖 것을 물어뜯고 다니고, 여차하면 침대 밑 깊은 곳에 들어가 웅크리고 앉은 채 꼼짝도 하지 않고, 집안 여기저기 똥을 싸고 다니는 등 녀석은 그를 꽤나 만만찮게 애먹였다. 나중엔 선물한 내가 다 미안해질 정도였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언제나 '사람 먹을 쌀은 떨어져도 토끼 먹일 사과는 떨어뜨리면 안 된다'면서 전화를 할 때마다 토끼 먹일 사과 혹은 신선한 채소를 사러 마트에 가는 중이곤 했다.
녀석은 그렇게 그의 손에서 몇 년을 살다가 토끼별로 떠났다.
어제 인터넷에 올라온 반려 토끼들의 영상을 보다가 문득 코로 생각이 났다. 왜, 그런 얘기가 있지 않던가. 천국의 입구에 가면 먼저 간 반려동물들이 앉아서 주인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그런 거라면 그도 거기서 코로를 만났을까. 그래서 예전 그때처럼, 전선을 물어뜯느니 마느니 옷을 다 갉아놓느니 마느니 머리카락을 쥐어뜯느니 마느니 하는 것으로 투닥거리고 있을까.
이상한 일이다. 그의 곁에 녀석이 있을 거라는 생각만으로도 왠지 마음이 조금 놓이는 기분이다. 다정한 개도 살가운 고양이도 아닌데도. 그의 말로 녀석이 귀엽기만 했던 건 딱 처음 일주일뿐이었다는 데도. 적어도 그곳에서 그는 혼자이진 않겠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