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을 넘어서면서부터 슬슬 덥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잘 때 침대 쪽으로 난 창문을 조금 열고 자고 있다. 낮은 더워도 밤이 되면 서늘하고, 그해서 그리로 들어오는 바람 정도면 충분했기 때문이다. 침대 정리를 하면서 이불을 좀 얇은 것으로 바꿨더니 뭐 그 정도면 한동안은 끄떡없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오늘 새벽, 드디어 나는 자다가 '더워서' 선풍기를 틀었다. 드디어 창문에서 들어오는 바람 정도로는 해결이 안 되는 수준까지 온 것이다. 어제저녁에 비가 많이 올 예정이니 조심하라는 문자가 왔었지만 내가 사는 쪽은 비는커녕 날씨만 쨍쨍하니 맑았다. 올 비가 오지 않으면 더 습하고 더워지기 마련인데 어쩌면 그래서인지도 모른다.
지금의 이 일들은 분명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다 겪은 일들일 텐데 올해 처음 겪는 것마냥 새삼스럽고 심지어는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재작년 이전의 일들이야 다 그와 함께 겪은 일들이니 먼 옛날의 일처럼 느껴지는 것이 당연한지도 모르지만, 뻔히 나 혼자 겪어낸 작년 여름의 기억은 다 어디다 팔아먹고 이렇게 처음 겪는 기분이 드는지 모르겠다. 생각건대 작년의 나는 아마 반쯤 넋이 나가 있는 상태였어서 그 상태에서 겪어낸 모든 것들을 제정신을 가지고 겪어낸 것이 아니어서 기억에 또렷하게 남아있지 않은 게 아닐까. 뭐 그런 생각을 한다. 특히나 이맘때라면 정말로 내가 허공에 붕 떠 있는 기분으로, 그야말로 죽지 못해 하루하루 연명하고 있었을 시기이니 더더욱.
그래도 그 와중에 잊지 않고 선풍기를 사놓은 작년의 나를 아주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새로 산 선풍기는 그라면 절대로 사지 않았을, '디자인이 예쁘지 않은' 물건이지만 그래도 무게가 가벼워서 여기저기 끌고 다니기 좋고 리모컨이 들었다 안 들었다 하던 예전 선풍기에 비해 리모컨도 잘 먹고 무엇보다도 선풍기를 좀 틀어놓으면 뜨거워지는 날개 뒤 모터부가 굉장히 빨리 식는다. 그 반쯤 정신 나간 와중에, 그래도 이것저것 비교해서 이 녀석을 사다 놓은 작년의 나에게 오늘은 좀 고맙다는 말을 해야 할 것 같다.
이달 말쯤이 지나면 그 없이 지낸 시간이 450일 정도가 된다. 그러면 그와 함께 보낸 시간의 0.5% 정도를 나 혼자 보낸 셈이 된다. 이런 걸 계산해서 뭐 어쩌겠다는 건지는 나도 모른다. 딱히 그를 잊고 싶은 것도 아니면서도. 그냥, 내가 혼자 나를 버텨내는 시간이 길어지면 나도 조금은 의젓해지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