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당신에게

냉동만두가 필요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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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어제는 갑자기 변덕이 죽을 끓어서,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 운운하는 글 한 꼭지를 써놓고는 후다닥 옷을 갈아입고 그를 만나러 다녀왔다. 사실 내 생활은 늘 이런 식이다. 혼자 품고 있기 어려운 일들이 생기면, 나는 그걸 엄마에게 일러바치는 어린애처럼 그의 봉안당으로 쪼르르 달려가 뭐가 이랬고 저랬고 내가 정말 더럽고 치사해서 못 살겠다는 우는 소리를 한참이나 하다가 돌아오곤 한다. 정작 그의 생전에는 안 하던 짓이라서 참 씁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게 열 시도 넘어 집을 나섰다가 돌아오니 시간은 오후 2시도 지나 있었다. 이젠 밥을 먹어야 할 텐데. 부랴부랴 걸어놓고 나간 예약 취사 덕분에 밥이 다 되기를 기다릴 필요는 없다지만 뭘 해서 먹어야 하는지 앞이 캄캄했다. 끓여놓고 몇 끼를 잘 먹던 순두부찌개도 지난 주말에 다 먹어버렸고, 식은 밥이면 그냥 눈 딱 감고 라면이나 하나 끓여서 막아먹겠지만 또 금방 한 따뜻한 밥 옆에 라면이라니 이건 밥에 진심인 한국 사람으로서의 예의가 아니다. 어떡하지.


이럴 때 요리 곰손을 도와주는 건 역시 냉동실 한 구석에 처박아둔 냉동식품들이다.


요리용 사골 육수가 있다면 더 좋았겠지만 어제는 그런 것조차도 없었다. 어디서 주워들은 가락으로 다진 마늘에 간장, 고춧가루, 굴소스, 설탕, 다진 파를 섞고 그 위에 끓인 기름을 부어 양념을 만들고, 그가 재어놓은 라면스프들 중에 곰탕라면 스프 하마를 꺼내 끓는 물에 풀어서 육수를 만든 후에 만든 양념을 부었다. 그리고 남은 냉동만두 몇 개를 대충 집어넣고 몇 분인가를 끓였다. 라면 끓이는 것과 별로 시간 차이도 나지 않는 공정 끝에, 만둣국 비슷한 물건이 하나 만들어졌다. 나는 그 국을 들고 앉아, 아침부터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고 먼 길을 갔다 오느라 진 허기를 허겁지겁 달랬다.


한때는 냉동식품 없이는 밥을 못 먹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어딘가 '공장맛'이 나는 그 특유의 맛에 질려서 조금은 멀리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순간이 오면 언제나 나를 구해주는 건 냉장고 한편에 처박아 둔 냉동만두 혹은 냉동돈가스뿐이다. 아마 이런 순간을 위해서 마트에 장을 볼 때 냉동만두 한 봉지씩은 꼭 사다가 쟁여두는 것이기도 하겠지.


응, 그러니까 그런 거구나. 하루종일 바깥에서 고생하고 집에 왔는데 먹을 거라곤 아무것도 없는 그런 상황인 거구나. 냉동실에 만두 한 봉지 정도는 있겠지 생각했지만 그것조차 없는 그런 상황인 거구나. 그라는 '비빌 언덕'이 사라져 버린 지금의 내 상태란. 한동안 있는 것조차도 잊어버리고 있던 마지막 냉동만두를 몽땅 털어 넣은 만둣국을 먹으면서, 어제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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