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당신에게

꽃도 더위를 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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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급작스레 나갔다 올 일이 좀 생겼다. 이럴 때 고민되는 문제 중의 하나가 창문을 열어놓고 나가느냐 닫고 나가느냐 하는 점이다. 그리고 그런 고민이 될 때 내 선택은 대개 닫는 쪽이다. 집에 사람이 있을 때야 그 재량에 맡겨두면 될 일이지만 이젠 그럴 수도 없는 처지인 데다가 요즘 소나기는 소나기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극성맞은 경우가 많아 한번 들이치면 집안을 절단 내놓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녀왔을 때 후끈한 공기가 나를 맞을 것을 예상하면서도 뭐 어쩔 수 없지 하는 기분으로 창문을 다 닫아두고 나갔다.


그리고 그 여파는 어이없게도 그의 책상에 꽂아둔 노란 장미에서부터 왔다.


분명 아침나절까지만 해도 생생하게 잘 살아있던 녀석들이었는데 밤이 되어 자리에 누우려고 보니 하나같이 고개를 꺾고 시들시들해져 있었다. 아무리 꺾여져 꽃병에 꽂혀 있다고는 해도 꽃은 생물이기 때문에 튤립이나 작약 같은 몇몇 특이한 케이스가 아니고서는 이런 식으로 '갑자기' 시들지 않는다. 특히나 장미의 경우는 그 아름다운 모양에 비해 상당히 생명력도 긴 꽃이어서 더욱 그렇다. 그래서 나는 적이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부랴부랴 야밤에 물을 한 번 더 갈고, 얼음 몇 조각까지 띄워 주는 짓을 해 보았다. 그러나 그 정도로는 영 안 되겠던 모양인지 사 온 지 일주일이 채 되지 않은 노란 장미는 그렇게 명이 다하고 말았다.


그러고 보니 작년 여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부산에 당일치기로 다녀와야 할 일이 생겨서 창문을 닫아두고 하루 나갔다 왔더니 그의 책상에 꽂아두었던 공작초가 있는 대로 시들어 늘어져 있었던 걸 본 기억이 났다. 이유는 한 가지뿐이다. 그때도 어제도 날씨가 더웠다는 것. 아침에 갈아준 알량한 물 한 모금으로는 이 찌는 날씨를 감당할 수 없었다는 것.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이유는 고작 그것 하나뿐이다.


꽃병에 꽂아놓는 꽃 한 다발을 위해서도 아침마다 물을 갈고 꽃대를 잘라주고 가끔은 얼음을 넣어주고 습도를 맞춰주는 등등의 노력을 해야 한다. 그래야만 조금이라도 그 꽃을 오래 볼 수 있다. 그가 내 곁에 있던 시절, 나는 그를 위해 요즘 꽃병에 들이는 만큼의 노력이라도 했던지, 문득 그런 걸 생각하고 숙연해진다.


늘 느끼는 거지만 나는 너무 늦게 깨닫는다. 그게 뭐든 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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