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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저히 실시간 방송이라는 걸 볼 엄두가 나지 않아 OTT의 vod 서비스 속에서만 살던 1년 전에 비해 요즘 우리 집 텔레비전은 많이 바빠진 편이다. 돌아다니는 채널이 얼추 10여 개쯤으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물론 그 채널들은 대부분이 예능 혹은 스포츠 채널로 한정되어 있고, 시간이 흘러가는 걸 실시간으로 느낄 수 있는 공중파까지는 아직 도달하지 못하긴 했다. 그래도 그것만으로도 장족의 발전이라고 생각 중이다.
물론 이 채널들에서 방송하는 프로그램이라고 해서 다 보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채널 하나를 하루 종일 틀어놓고 있을 수는 없고 시간대별로 채널을 옮겨야 한다. 오전에는 무한도전 정주행을 해주는 채널, 점심 먹은 후에는 맛있는 걸 먹으러 다니는 프로그램을 자주 틀어주는 채널, 저녁 무렵엔 개그콘서트 재방송하는 식이다. 그리고 간혹 셜록 같은 내가 좋아하는 영화나 드라마 시리즈를 재방송해주는 채널이 얻어걸리면 거기서 하루 신세를 지기도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는데, 밤이나 새벽 무렵에 은근히 먹방을 틀어주는 채널들이 많다는 것이다.
요즘 나는 1년 이상 하루에 한 끼만 먹으면서 살고 있는 데다가 그 한 끼 또한 썩 실하게는 먹고 있지 못한 편이다. 그런 와중에 야밤에 보는 먹방은 가끔은 고문에 가깝게 느껴지기도 한다. 메뉴도 다양하다. 치킨, 삼겹살, 피자, 온갖 종류의 맛있어 보이는 면들. 정작 밥 먹을 시간이 되면 도대체 이놈의 세상은 하나만 먹으면 밥 한 끼 안 먹어도 되는 그런 알약 하나 못 만들고 뭐하는지 모르겠다고 투덜거리면서도 그 먹방들을 볼 때면 잠시 그 음식들의 영롱한 자태에 마음을 빼앗긴다. 아, 맛있겠다. 미친 척하고 시켜 먹을까. 돈이 문제가 아니다. 다이어트가 문제도 아니다. 혼자서 배달음식을 시켜 먹는다는 것은 의외로 여러 가지 후폭풍을 남기며(음식이 남아서 자꾸만 떠난 사람을 생각하게 된다던가 하는 식으로), 나는 이미 그런 씁쓸한 일을 몇 번 겪고 어지간하면 배달은 시키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런 고문을 셀프로 당하면서도 나는 매일 밤마다 먹방을 본다. 그리고 중얼거린다. 아, 맛있겠다. 미친 척하고 시켜 먹을까.
매일 밤마다 이런 삽질을 하면서도 먹방을 보는 건, 그 속에는 그 어떤 슬픔도 외로움도 없기 때문이다. 여러 사람이 둘러앉아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고, 호들갑에 가까운 리액션을 하고, 더러는 게임을 해서 못 먹는 사람이 생기기도 하는 그 과정에는 그 어떤 아픔도 없다. 난 그냥 그게 좋을 뿐인지도 모른다. 내가 누군가와 마주 앉아 웃으며 밥을 먹은 게 너무 오래전 일이라 그런 건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나는 그 먹방을 보고 식욕이 당기면서도 결국은 배달음식을 시키지 못한다. 텔레비전 속에 있는 그 모든 것들이, 지금 내 식탁에는 없기 때문에. 슬픈 일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