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당신에게

다음 굴소스는 언제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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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그가 꼭 갖춰놓고 쓰던 양념 중에 굴소스가 있다. 다른 간을 대충만 해도 굴소스 한 스푼만 넣으면 꽤 그럴듯한 맛이 난다는 이유로 그는 굴소스를 좋아했다. 그리고 나는 그게 무슨 말인지를, 그가 떠나고 난 후 내 손으로 밥을 해 먹기 시작하고부터야 조금 알게 되었다. 식은 밥 한 덩이를 넣고 볶음밥을 해 먹을 때나 대충 찢은 게맛살을 끓여서 중국식 게살스프를 해 먹을 때 그 굴소스 한 숟가락이 들어가느냐 아니냐를 놓고 음식의 맛이 꽤 드라마틱하게 변하는 것을 나는 몇 번 경험한 적이 있었다. 아, 이래서 이 사람이 맨날 굴소스를 썼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그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달아서, 그가 그렇게나 입에 침이 마르도록 굴소스 예찬론을 늘어놓을 때 매우 시큰둥하게 대답한 것이 미안하게 느껴질 정도로.


그러나 굴소스가 그렇듯 유용한 것과는 별개로, 나는 그가 하던 것처럼 매 끼니 정성을 다해 밥을 챙겨 먹는 타입의 인간이 아니었고 그래서 그가 쓰다 남긴 굴소스는 냉장고에서 헛도는 일이 많았다. 냉장고를 열면서 다른 무언가를 꺼낼 때마다 저 굴소스는 유통기한이 언제까지인가를 걱정하는 것 또한 내 루틴 중의 하나였다. 물론 지난 1년 간의 경험으로 나는 식재료의 유통기한이라는 것이 꽤나 타이트하게 책정되는 편이며, 냉장고 안에 보관만 잘한다면 유통기한이 조금 넘은 정도로는 어지간해서는 '먹어도 안 죽는다'는 사실을 체득한 후이긴 했지만, 어쨌든 그랬다.


그리고 어제, 나는 마지막 남은 굴소스를 탈탈 털어서 볶음밥을 해 먹었다. 확인한 굴소스의 유통기한은 정확히 2023년 6월 23일까지였다. 나는 딱 일주일을 남겨놓고 굴소스를 무사히 다 먹어치운 것이다. 쓸데없는 뿌듯함, 그리고 알 수 없는 씁쓸함이 번갈아 밀려왔다.


내가 다시, 나 혼자 먹기 위해 굴소스를 살 일이 있을까.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크게 아쉽지는 않은 저 굴소스를. 굴소스는 역시 된장이나 고추장, 간장 같은 것과는 다르다. 그런 것들은, 떨어지면 사 와야 하고 어지간해서는 크게 무리하지 않아도 유통기한을 넘기지 않고 다 먹을 수 있다. 그러나 굴소스도 그럴까. 돈을 주고 사 와서 냉장고에 처박아놓고 어쩌다 한 번씩 쓰다가 결국 유통기한을 넘겨서 다 버리는 식이 될 것 같으면, 그걸 굳이 돈을 주고 살 필요가 있을까. 이 항목에서, 아직 굴소스는 100점 만점에 70점 정도밖에는 받지 못한 상태다. 그래서 소위 '떨어지면 무조건 사야 하는' 품목에는 들지 못했다. 때문에 나는 내가 다음번 굴소스를 언제쯤 사게 될지 알 수 없다.


그가 있어서 내 삶은 참 다채로웠구나. 그런 생각을 한다. 그리고 나 혼자서는, 어지간한 각오로는 그가 남겨주고 간 것들을 다 지켜내기 쉽지 않겠다는 생각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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