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당신에게

폭염주의보

-432

by 문득

날이 덥구나, 하고 생각하긴 했다. 그러나 뭐 어제만 그랬던 건 아니었다. 5월 말 견디다 못해 선풍기를 꺼내던 그 무렵부터 날은 내내 더웠다. 그리고 요 며칠새 더 심해진 기분이었다. 비가 온 다음 날은 반짝 공기의 온도가 내려가 좀 쾌적해진다는 느낌이 잠시 있지만 그뿐이었고, 날은 본격적으로 가속도를 내며 더워지고 있었다. 나른한 오후가 되면 전에 없이 아이스크림 생각도 나고 그랬다. 뭐 그래서, 그런 나날의 연장선상일 줄만 알았다.


빨래를 좀 하려고 보일러를 켜다가, 나는 보일러의 온도가 30도까지 올라가 있는 것을 보고 기겁했다. 아니. 30도라니. 이런 온도는 그래도, 양심상 7월은 되어야 찍어주는 게 아니던지. 그제야 나는 인터넷 뉴스 몇 군데를 찾아보고, 오늘 몇몇 지역의 온도가 30도에 육박할 예정이며 올해 들어 첫 폭염주의보가 내려졌다는 사실을 알았다.


여기서부터는 원효대사의 해골물 수준의 이야기다. 몰랐을 때는 그냥저냥 넘어갈만한 더위가, 30도에 육박하는 수은주를 확인하고 나니 이젠 견딜 수가 없을 정도의 더위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마도 지금이 고작 6월 중순이라는(말조차도 아닌) 자각만 없었더라면 나는 미친 척하고 어제 에어컨을 틀었을지도 모른다. 온수 전용으로 돌려놓은 보일러 때문에 방바닥이 더워질 일 같은 건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세탁기가 돌아가는 내내 보일러의 컨트롤러 쪽을 흘끗흘끗 노려보았다. 그런다고 30도까지 올라간 온도가 떨어질 리도 없을 텐데. 그리고 오늘 아침엔 기어이 땀 때문에 목으로 들러붙은 머리카락의 기척에 짜증을 내며 일어났다. 날이 덥다고 해도 아직은 한낮 가장 더울 때 기준일 것이며, 열대야 같은 증상은 나타나지도 않았을 텐데도.


아, 이제 정말 여름이 시작되려는구나. 문득 그런 생각을 한다.


작년 내 여름은 어땠던지, 그런 걸 생각해 본다. 그런데 별로 기억나는 게 없다. 혼자 남은 주제에 무슨 에어컨이냐고, 선풍기나 틀고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가 닥쳐온 장마 때문에 장문을 닫고 찜통이 된 집 안에 갇혀 있다가 마지못해 에어컨을 처음으로 틀던 그 순간의 기억 정도가 남아있을 뿐이다. 작년 여름에도 꽤나 역대급 더위니 어쩌니 하는 말이 나왔던 것 같은데 그 서너 달을 어떻게 버텨냈는가 하는 기억은 내 머릿속에서는 까맣게 지워지고 없다. 이상할 정도로.


그리고 이제 또 한 번의 여름이 내 눈앞에 와 있다. 뭘 어떻게 해야 될지 잘은 모르겠지만, 그래도 잘 살아내 보자. 그런 생각을 한다. 때아닌 더위에 늦잠을 자버린 어느 월요일 아침에.


1394157_1205459_2620.jpg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다음 굴소스는 언제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