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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된 연도가 긴 프로그램은 그 자체가 일종의 사료(史料)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가끔 있다. 그 속에 어쩔 수 없이 묻어있는 그 시절만의 흔적에서, 아 그러게. 저 때 이런 일도 있었지 그때쯤엔 난 뭘 하면서 살았고 무슨 일을 했었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보냈었지 하는 생각들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된다.
요즘 즐겨보는 두 개의 프로그램, 무한도전과 개그콘서트가 그렇다.
무한도전의 경우 2005년에 시작해 2018년까지, 13년간 방송되었다. 개그콘서트의 경우는 더 길어서 1999년에 시작해 2020년까지 방송되었으니 요즘 텔레비전에 나오는 어지간한 아이돌 멤버들보다 더 나이가 많은 셈이다. 이렇게 장시간 방송된 탓인지 두 프로그램의 여기저기에는 온갖 세월의 흔적이 묻어있어서 보는 사람을 아득해지게 한다. 지금 보기에는 너무 뚜렷해 어색하게 느껴지기까지 하는 여자 출연자들의 화장이라든가, 지금 기준으로는 그다지 웃기지 않는 유머 코드라든가, 10년쯤 전 그 말 한마디 안 쓰고는 대화가 되지 않던 유행어라든가 하는 것들 속에 파묻혀 있다 보면 잠시 그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리고 가끔, 이젠 더 이상 내 곁에 없는 사람들의 가장 아름답던 시절이 그 속에 박제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기도 한다.
어제도 그런 얼굴을 두 명이나 발견했다. 한 분은 희극인 고 박지선 씨, 한 분은 카라의 멤버 고 구하라 씨였다. 두 사람 모두 너무나 밝고 아름다운 얼굴로 지나간 방송의 필름 속에 살아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슴이 아픈 건, 그들과 함께 방송을 하는 동료들의 태도였다. 그 순간 카메라의 같은 샷에 잡힌 그들 중 단 한 명이라도, 불과 몇 년 후 그들이 그런 안타까운 선택을 하게 되리라는 걸 알았을까. 단 한 명이라도 그 사실을 미리 알았더라면 뭔가가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그런 가슴 아픈 생각에, 나는 잠시 보고 있던 방송의 흐름을 놓쳐버리고 한참이나 화면 속에 남아 있는 두 사람의 아름답게 미소 띤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먼저 떠나간 사람의 흔적이 그런 식으로나마 이 세상에 남아있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억지로 확대한 증명사진 한 장 말고는 그의 어떤 흔적도 갖고 있지 못한 나는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해 본다. 그런 식으로라도 볼 수 있다는 건 좋은 일일까. 아니면 볼 때마다 오히려 더 가슴이 아프게 될까. 화면 밖의 나는 나이를 먹고 늙어가는데 화면 속에 남아있는 그는 여전히 그 모습 그대로일 테니까. 그래도 뭐라도 좀 남겨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 생각을 한다. 목소리든, 얼굴이든, 그게 뭐든.
이렇게 훌쩍 가버릴 거면 연예인 같은 거나 좀 해보지 그랬냐고, 그런 귀먹은 지청구를 해본다. 어느 마음이 아픈 아침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