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당신에게

메밀국수만 먹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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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여름이 오면 그가 꼭 사다가 쟁여놓곤 했던 메뉴가 두 가지 있다. 하나는 메밀국수, 하나는 콩국수다. 여름은 덥고, 요 몇 년 새 더 그렇게 되었고, 그래서 제 아무리 날고 기는 짓을 해도 더운 불 앞에서 끓이고 굽고 볶은 뜨거운 음식은 쳐다도 보기 싫어지는 날이 언제고 오기 마련이고, 그럴 때를 대비한 비상식량이었다. 메밀국수는 내가 좋아했고 콩국수는 그가 좋아했다. 그래서 너무 덥고 입맛도 없고 뜨거운 불 앞에 붙어 서서 뭔가를 만들 엄두가 나지 않는 날, 우리는 전화 찬스를 쓰는 기분으로 메밀국수나 콩국수를 대충 끓여 먹고 그날 하루를 때우곤 했다.


그가 떠나고 난 후 그렇게까지 좋아하지 않았던 콩국수는 자연히 사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그때 메밀국수를 사다가 재놓던 습성은 여전히 남아서, 나는 아직도 메밀국수를 한 팩씩 사다가 쟁여놓고 입맛 없거나 출출한 오후에 하나씩 끓여 먹곤 한다. 아, 물론 2, 3년 전부터는 그는 숫제 집에서 쯔유 끓이는 법을 배워서 쯔유를 끓여놓고 메밀면만 따로 사다 놓고 희석한 쯔유에 메밀면을 만 진짜 메밀소바를 만들어주곤 했었지만 그건 뭐 차치하기로 하고.


어제는 정작 더워서 안절부절을 못하던 어제에 비해서는 많이 살만한 날이었다. 온도는 조금 내려갔고 일단 볕이 나지 않아 살만 했다. 그러나 한번 떨어진 입맛은 좀체로 돌아오지 않았다, 잘하지도 못하는 요리나마 나 혼자 먹을 것을 만들겠다고 불 앞에 붙어 서서 한참이나 이것저것을 해야 할걸 생각하니 끔찍했다. 그래서 나는 그냥 메밀국수나 하나 끓여서 대충 먹고 때우기로 했다. 원래라면 비빔면이나 메밀국수를 먹을 때는 하다 못해 김밥이라도 한 줄 사다 놓고 같이 먹는 편이다. 그 면 하나만 달랑 먹고 치우면 분명 오후에 견딜 수 없이 배가 고파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제는 그런 것조차도 귀찮았다. 그래서 그냥 생짜로 메밀국수나 하나 끓여 먹고, 오후에 배가 고프면 그때 일은 그때 가서 생각하기로 했다.


그리고 나는 어제 오후에 이런저런 밀린 일들을 하느라 정신이 팔려서, 별반 배고픈 줄도 모르고 하루를 그냥 넘겼다.


나는 그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다가 오늘 아침 체중계에 올라서서 1킬로그램 가까이 체중이 빠진 것을 보고서야 알았다. 아니 오늘은 또 살 왜 이렇게 많이 빠졌지? 그리고 깨달았다. 아. 어제 나 메밀국수 하나 먹고 다른 거 아무것도 안 먹었구나. 그래서 실감한다. 다른 것 없이 메밀국수 하나만 끓여 먹어도 살 수는 있구나 하는 것이 첫 번째, 그리고 살은 역시 운동이 문제가 아니라 안 먹어야 빠지는구나 하는 것이 두 번째.


점점 뭔가를 찾아먹는 게 귀찮아지고 있다. 정말로 어느 친절하신 독자님의 조언대로 밀키트라도 몇 개 사다 놓아야 할까 하는 생각을 한다. 아무리 그래도, 또 메밀국수만 하나씩 끓여 먹으면서 매일매일을 살 수는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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