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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나를 괴롭히는 소소한 귀차니즘 증상이 하나 있다. 하루에 한 번 먹는 밥인데, 그나마 어떻게든 차려서 간신히 먹고 나면 그 몇 개 안 되는 그릇을 치우기가 싫어서 한없이 꾸물거리게 되는 것이다. 혼자 먹는 밥을 이것저것 늘어놓고 먹을 기분까지는 아무래도 나지 않아서 내가 밥 먹는 데 소용되는 그릇이라고는 많아봤자 밥그릇 하나 국이나 반찬을 담을 그릇 하나 숟가락 젓가락 각 한 짝 물컵 정도가 고작이며 그 외에 조리할 때 썼던 프라이팬이나 냄비 국자 정도가 나와 있는 것이 고작이다. 이런 '한 줌도 안 되는' 설거지가 귀찮아서 요즘 나는 밥을 다 먹고도 한참을 노닥거리다가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나곤 한다. 그다지 부지런하지도 않은 주제에 싱크대에 음식물 묻은 그릇이 쌓여있는 것만은 못 보는 이상한 성격 탓만 아니었으면 한두 끼 정도 설거지를 미뤄놓고 살았을지도 모른다.
지인에게 요즘 왜 이런지 모르겠다는 푸념을 했다. 이제 빨래고 설거지고 내가 안 하면 아무도 안 하는데. 다른 일에는 안 그러면서 유독 밥 먹고 나서 밥 먹은 그릇 몇 개 치우는 게 귀찮아서 죽을 것 같다고. 지인에게서는 대번 그러지 말고 이참에 식기세척기를 하나 사라는 말이 돌아왔다. 아니 나 혼자 먹는 거에 그릇 몇 개나 나온다고 그거 치우기 귀찮다고 식기세척기씩이나 사느냐는 내 말에 지인은 그렇게 대답했다. 그런 식으로 따지면 세탁기며 청소기는 왜 사냐고. 말인즉슨 옳은 말이어서 나는 아무 대꾸도 못했다.
식기세척기라는 물건이 처음 나왔을 때 그도 나도 회의적이었다. '저거 설거지 제대로 되긴 하냐'는 의문 때문이었다. 사람이 사람 손으로, 사람 눈으로 이것저것 살펴 가면서 해도 가끔은 밥풀이 그대로 눌어붙어 있다든가 기름기가 덜 닦여서 끈적거린다든가 그런 일이 있는데 '기계 따위'가 그런 걸 다 살펴서 설거지를 한다고? 한 번 돌려놓고 사람이 재벌로 다시 설거지해야 되는 거 아니야? 그런 걸 왜 돈 주고 사? 누가 그러란 사람도 없는데 그도 나도 부창부수 비슷하게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아주 오래전의 일이다. 듣자 하니 요즘은 신혼부부가 혼수가전 장만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품목 중의 하나가 식기세척기라는 모양이다. 세상이 이렇게나 좋아지고 있으니, 식기세척기도 그만큼 좋아졌겠지. 어쩌면 지인의 말대로, 내 귀차니즘을 타파하는 가장 쉽고 깔끔한 방법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렇다고는 해도 역시 나는 다른 건 몰라도 식기세척기를 돈 주고 들일 것 같지는 않다. 기껏해야 밥그릇 하나 국이나 반찬을 담을 그릇 하나 숟가락 젓가락 각 한 짝 물컵 정도가 고작인 내 알량한 설거지거리를 대신해 줄 식기세척기를 사느니 내 귀차니즘을 어떻게든 날려 보내는 방법을 찾는 것이 내게는 더 쉬운 일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건 언젠가 혼자 있는 집이 외로워서 저 혼자 돌아다니며 집안을 치우는 로봇청소기라도 하나 사면 어떨까 하고 생각했던 것과는 조금 다른 문제이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