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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가 비슷할 거라고 생각한다. 어렸을 때는 '기분이 내키면 언제든, 아무 눈치도 보지 않고' 편의점에서 맥주 한 캔을 사서 아무 데서나 꿀떡꿀떡 마실 수 있는 어른들이 참 부러워 보였다. 딱히 술에 대한 욕구나 갈망이 있어서라기보다는, 열아홉 살에서 스무 살 넘어가는 제야의 종소리가 울리는 그 순간을 지나느냐 아니냐가 별 것도 아닌데 그것을 기점으로 여기까진 안되고 저기서부터는 된다는, 일종의 금기에 대한 환상 내지 동경 같은 게 아니었나도 싶다. 그때의 기억이 남은 탓인지, 소소하게 혼자 마시는 맥주 한 캔 정도의 혼술은 아직도 내게는 작은 로망이기도 하다.
그러나 여기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다. 나는 도대체 뭐가 맛있는 맥주인지를 잘 모르겠다는 점이다.
그의 건강이 그렇게까지 나빠지기 전, 우리는 월요일 저녁마다 조촐한 '위로회'를 열곤 했다. 별 건 아니었다. 뻔하디 뻔한 그와 나의 삶이 돌아가는 패턴 상, 월요일은 주말 동안 잘 쉬고 기세가 오를 대로 오른 무언가가 죽기 살기로 달려들어 사람을 물어뜯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 끔찍하고 지긋지긋한 월요일을 무사히 잘 살아낸 보상으로 저녁이 되면 그는 안주를 만들고 나는 편의점에 가서 맥주를 사 왔다. 그래서 오늘 하루도 고생했다는 조촐한 인사를 나누곤 했었다.
그러나 그렇게 사 오는 내 맥주가 성공하는 날은 그리 흔치 않았다. 요즘은 또 워낙 맥주의 가짓수도 많아지고 브랜드도 많아져서 나는 편의점의 맥주 냉장고 앞에 붙어서서는 거기 적혀 있는 이름과 설명을 다 외울 기세로 한참을 읽어보다가 개중 맛있을 것 같은 맥주를 사 오곤 했다. 그러나 그렇게 들은 공이 무색하게도 내가 사 온 맥주들은 대개 그저 그래서, 그는 한참이나 웃다가 이럴 거면 애써 고민하지 말고 그냥 네가 좋아하는 특정 브랜드 맥주를 사 오는 게 낫지 않겠냐고 말하곤 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뭔가 더 맛있는 새로운 맥주'에 대한 로망을 포기하지 못해서, 번번이 다른 맥주를 사 오고 실망하고를 몇 번이고 반복했다.
어제도 간만에, 맥주 한 캔 생각이 나서 집 앞 편의점에 내려갔다. 익히 내가 좋아하는 몇몇 맥주를 고르면 그냥저냥 맛있게 먹을 수 있을 것을 알면서도 나는 또 예의 '뭔가 다른, 내가 모르는 맛있는 맥주'에 대한 환상을 포기하지 못하고 한참을 고민하다가 무슨 바나나맛 맥주라는 것을 하나 집어왔다. 결론은 역시나 그저 그랬다. 도수는 여느 맥주보다 조금 높은 것 같았지만 이게 어디가 바나나맛 맥주라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어서 나는 맥주 한 캔을 먹는 내내 투덜거렸다. 아, 이럴 거면 그냥 늘 마시던 거나 사 올 걸 하고.
그러나 웃기는 건 매번 이렇게 새 맥주에 낚이고 실망하기를 반복하면서도, 난 아마도 또 맥주가 땡기는 날에 편의점에 가서 보도 듣도 못한 새 맥주를 사 오고 실망하기를 반복할 거라는 사실이다. 사람이란 웬만해서는 잘 변하지 않는 법이니까. 사람 하는 짓 참 안 변한다고, 어제 나를 지켜본 그는 아마 그렇게 생각했을 것 같다. 그러게. 내가 생각해도 참 그런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