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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분들은 어떠신지 모르겠다. 내 경우에, 뭔가를 먹고 싶다는 충동은 그야말로 뜬금없이, 불쑥 찾아와서 사람을 힘들게 한다. 내가 사는 곳은 아주 시골이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역시나 서울처럼 골목마다, 동네마다 24시간 영업하는 가게들이 빼곡한 곳은 아닌 게 사실인지라 늦은 밤에 이런 느닷없는 식욕이 터지면 그야말로 이를 악물고 참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는데도 그렇다.
어제는 느닷없이 피자 생각이 났다. 피자는 그래도 몇 번 먹은 적이 있다. 우리나라의 월드컵 경기가 있던 날에 냉동피자를 사다가 오븐에 데워서 먹은 적도 있었고 녹아서 쭉쭉 늘어지는 치즈의 식감이 그리운 날 제일 작은 레귤러 사이즈를 시켜놓고 두 번 나눠서 먹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 무색하게 혼자 한 판을 다 먹어버린 적도 있었다. 그랬던 피자 생각이 뜬금없이 났다.
뭘 또 피자야, 피자는.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혀를 찼다. 레귤러 사이즈 한 판을 시켜서 기어이 앉은자리에서 한 판을 다 먹어버리고 난 후, 나는 때아닌 포만감과 그보다 더한 자괴감에 시달렸다. 내가 이렇게나 참을성이 없는 인간이었나 하는 사실, 그리고 그가 떠나간 지 얼마나 됐다고 혼자서 피자 한 판을 시켜 너끈히 먹어치우는 나의 범속함에 대한 실망, 뭐 그런 것들이 한 데 뒤섞인 아주 복잡하고 불편한 감정이었다. 피자를 먹는 즐거움은 한순간이었지만 그 찝찝하고 끈끈한 불쾌감은 오래 남았다. 나는 그런 기분을 또 맛보고 싶진 않았다.
이럴 때 만만한 것은 그저 편의점이다. 피자가 아니라도, 뭐라도 입에 욱여넣으면 좀 나아지겠지. 그런 생각을 하고 옷을 주워 입고 편의점에 갔다. 워낙 자주 가서 어디에 뭐가 있고 그 물건의 가격은 대충 얼마라는 것까지 다 아는 매장 안을 빙빙 돌다가, 나는 편의점에서 자체 브랜드로 만든 손바닥만 한 냉동 피자를 한 판에 3천 원도 안 하는 가격에 팔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피자 생각이 나서 한두 시간 고민한 것까지가 일시에 횡재했다는 기분으로 바뀌었다. 나는 두 번 고민할 것도 없이 그 조그만 냉동피자를 사서 집으로 돌아와 오븐에 구웠다.
싼 게 비지떡이라는 말은 어느 정도는 진리다. 3천 원도 안 하는 피자는 딱 그만큼의 맛이었다. 그러나 이 피자는 내가 굳이 자괴감에 빠지지 않고도 한 판을 혼자 다 먹을 수 있을 정도의 크기였으며(지름이 한 15센티 정도 되었던 것 같다) 가격 치고는 치즈 토핑도 꽤나 듬뿍 올라가 있어서 제법 피자 같은 맛이 났다. 나는 그런 식으로 때 아니게 솟아오른 식탐을 대충 달랬다. 아침에 일어나 체중을 재 보니 500그램 정도 몸무게가 늘었다. 이건 뭐, 어제 늦은 시간에 먹은 그 피자 한 판의 대가인 셈이고 그렇다고 생각하면 아주 적절한 편이다.
그가 이 이야기를 듣는다면 대번에 좋은 소리는 하지 않을 것이다. 그까짓 피자 한 판, 먹고 싶을 때 좀 먹는 게 어때서 그런 시키지 않는 삽질을 하느냐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래도 내 마음은 그렇지가 않다. 가끔 서글퍼진다. 그가 없는 생활에 너무 빨리 익숙해져가고 있는 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