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당신에게

장마

-439

by 문득

자고 일어나니 온통 날이 잔뜩 흐려 있다. 창문으로 들이치는 바람의 기세도 수상하다. 비야 뭐 잊을만하면 한 번씩은 오는 것이고 이렇듯 찌는 날씨에 한 번씩 내려 공기를 시원하게 훑어주는 비는 고맙기까지 하지만 오늘 날씨는 어딘가 기세가 심상찮다. 그래서 생각한다. 아, 이제 장마구나 하고.


이제 6월 말인데 지금 장마인 것이 맞는 건가 하는 생각을 문득 한다. 장마라는 건 그래도 7월쯤에 한 2주 정도 무시무시하게 비가 내리고, 그 와중에 태풍도 한두 번 쳐 주고, 그러고 지나가는 게 아니던지. 그러고 나면 그때부터는 정말 비명도 안 나올 만큼 더운 날씨가 한 달쯤 이어지고, 그 더위가 사그라들면서 여름이 퇴장하고 가을이 오는 그런 패턴이었던 것 같은데 확실하지는 않다. 사람의 기억이란 종종 편의에 따라 왜곡되며, 그래서 나의 이런 기억 또한 아직 장마가 올 때가 안 됐는데 장마가 진다는 투덜거림을 내뱉기 위해 나 스스로 기억에 약간 손을 댄 결과일지도 모르기 때문에 말이다. 어쨌든 잔뜩 찌푸린 하늘에 가끔 들리는 휘파람소리 같은 바람 소리가 또 그 달갑잖은 우기에 접어들었음을 말해주고 있는 것 같다.


한 며칠 사람을 달달 볶던 그 때 이른 더위가 사그라든 건 개중 좀 반가운 일이다. 어제는 정말이지 너무 더워서, 연신 바깥을 힐끗거리며 날씨가 왜 이렇게 덥냐는 말을 중얼거리다가 금쪽같은 일요일 하루를 다 날리고 말았다. 깔고 있는 시트가, 덮고 있는 얇은 차렵이불이 거슬려서 밤에 잠이 잘 오지 않을 정도였다. 오늘은 최고 기온이 25도 정도에 머무를 예정이라니 최소한 그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이런 식으로 또, 유달리 뒤숭숭하던 봄은 완전히 사라지고 또다시 여름의 초입에 섰구나. 그런 생각을 한다.


몇 달째 나를 괴롭히는 문제는 아직도 신발 밑창에 들러붙은 껌처럼 나를 괴롭히고 있다. 오늘도 그 관련한 전화통화를 몇 통 하고 언성을 높이느라 아침 일정이 전부 어그러져 버렸다(물론 그 이전에 유독 습한 날씨 때문에 잠을 설치고 늦잠을 잔 이유가 더 크긴 하겠지만). 찝찝한 기분에, 잔뜩 찌푸린 하늘을 바라보고 있자니 더욱더 기분이 우울해지는 것도 같다.


요즘은 장마 때보다도 장마가 끝나고 나서 한 번씩 때려 붓는 국지성 호우가 더 무섭던데. 올여름 장마는 또 얼마나 많은 비가 내리고 얼마나 사람을 우울하게 하려는지, 그런 때 이른 걱정을 잠시 해 본다. 물론 모든 일이 다 그렇듯 이 장마 또한 그렇게 지나가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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