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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가끔 어떤 슬픔 그 자체보다도 그 슬픔에 연관된 디테일에서 더 깊은 슬픔을 느낄 때가 있다.
그가 떠나간 후 가장 많이 울었던 순간 중의 하나는 떠나기 하루 전날 주문한 '참치캔'이었다. 그의 분류에 의하면 참치캔과 스팸은 '있으면 언제 써도 유용하게 쓰니 싸게 파는 것을 발견하면 쟁여놓을 만한 가치가 있는' 식재료였다. 점심을 먹고 핸드폰을 깔짝거리다가 나는 당시 종종 가던 소셜 커머스에서 참치캔 작은 것 30개를 2만 원 남짓하는 가격에 파는 것을 발견하고 이런 게 있다는 보고를 했고, 그는 가격 괜찮은 것 같으니 사놓으라는 말을 했다. 그리고 그날 새벽, 그는 떠났다.
그리고 그를 영안실에 눕혀놓고 경찰서로 어디로, 한참을 돌아다니다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 참치캔이 택배박스에 곱게 포장된 채 집 앞에 놓여있는 걸 발견하고 그야말로 목을 놓아 울었다.
그가 떠나간 후 꽤나 오랫동안 그 참치캔은 볼 때마다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통조림이라 소비기한은 넉넉하다지만, 서른 개나 되는 참치캔을 날더러 다 뭘 해서 어떻게 먹어치우라는 거냐고, 그런 말을 하면서 울기도 많이 울었다. 그러나 1년 남짓이 지난 지금 나는 그 참치캔을 요소요소에 참 요긴하게 써먹었다. 김치찌개나 김치볶음밥을 할 때 한 캔씩 까서 넣기도 했고 입맛이 없을 때 죽 끓여 먹을 때도 썼다. 그리고 참치마요덮밥 같은 건 꽤나 자주 해 먹었다. 그런 식으로 하나씩 둘씩 먹어 없애고, 평생도 두고 먹을 수 있을 것 같던 그 참치캔은 서너 개 정도가 겨우 남았다.
남아있는 것들을 다 먹으면, 또 어딘가에서 싸게 파는 참치캔을 좀 사다 놔야 할까 하는 그나 하던 생각을 나도 해 본다. 아닌 게 아니라 먹을 것이 마땅치 않은 날 참치캔은 꽤나 유용한 조커였다. 큰 캔도 필요 없고 가장 작은 캔 하나 정도면 나 혼자 한 끼를 해치울만한 뭔가를 충분히 만들 수 있으니까, 아무래도 비상식량 겸 좀 사다 놓는 게 좋겠다. 뭐 그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깨닫는다. 그래도 살겠다고, 살아보겠다고 내가 참 부단히 애쓰고 있구나 하는 사실을. 그가 떠나간 지 1년 하고도 석 달 정도가 지난 오늘 아침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