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장미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이었다. 일단 식상하다는 이유가 가장 컸다. 그리고 아름다움의 대명사쯤으로 서슴없이 꼽히는 것에도 약간의 거부감이 있었다. 아니 세상에 얼마나 많은 꽃들이 있는데 지가 뭐라고 그중의 여왕이고 아름다움의 대명사냐는 식의 택도 아닌 반발 심리 말이다. 그래서 처음 그의 책상에 둘 꽃을 사기 시작했을 때도 웬만하면 장미만은 피해서 다른 꽃들을 샀다.
그러나 요즘은 생각한다. 그건 장미에 대해 대단히 실례인 생각이었다.
장미의 가장 놀라운 점은 의외로 끈기가 있고, 오래간다는 것이다. 장미는 원두커피 말고는 입에도 안 댈 것처럼 생긴 여배우가 자판기에서 뽑은 밀크커피와 우유를 섞어서 만든 야매 라떼를 맛있다며 홀짝홀짝 마시는 것을 지켜보는 듯한 당혹감을 준다. 장미는 의외로 까다롭지 않고, 의외로 오래간다. 그래서 장미를 사다 꽂아놓는 주간은 마음이 편하다. 내가 할 것만을 해줘도 장미는 대개 일주일 이상을 끄떡없이 버텨주기 때문이다.
오늘 이 글을 쓰는 건, 문제의 투베로사가 또 까탈을 부리고 있다는 말을 하기 위헤서다.
이번 주의 꽃은 당연히 제 돈 주고 사 온 장미가 메인이고 덤으로 얻어온 투베로사는 사이드다. 그건 누가 봐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사다 놓은 지 이틀 남짓 만에 나 지금 이 환경이 몹시 불편하니까 뭐든 해보라고 까탈을 부리기 시작한 건 장미가 아니라 투베로사 쪽이다. 하 참, 아마 남자들이 말하는 '예쁜 여자를 보고 말을 걸었는데 옆에 있던 못생긴 친구가 시간 없다고 딱지를 놓는' 기분이 아마 이런 건가 싶기도 하다.
세 송이 중 한 녀석이 표가 나게 잎이 쳐지고 꽃들이 시들거리는 걸 아침에 발견하고 비상이 걸렸다. 이번 꽃을 사 오면서 꽃집 사장님에게서 열탕법을 정식으로 배워 왔다. 꽃대 끝을 조금 자르고, 뜨거운 물에 10초에서 30초 정도를 담갔다가 바로 찬물에 꽂는 거라고 한다. 나는 이미 이 열탕법을 두어 번 시도해 본 적이 있었지만 번번이 다 실패였다. 내가 뭘 몰라서 뭔가를 잘못했을 가능성이 있으니, 이번에 제대로 시도해 보기로 했다. 그래서, 정작 주인공인 장미에게도 안 하는 열탕법으로 줄기 끝을 지진 투베로사 세 송이를 다시 얼음 담근 꽃병에 꽂아 놓고 아침 내내 오며 가며 노려보는 중이다. 넌 뭔데 그렇게 까다롭냐고.
내가 좀 귀찮아져도 좋으니 이걸로 시들어 축 처지기 시작한 녀석들이 좀 생기가 돌아오면 좋겠다. 뭔가가 내 곁에서 제 정해진 시간을 다 쓰고 떠나는 건 언제 봐도 서글프고 슬픈 일이기 때문이다.